<황교안의 답> 읽어 보니, 그에게는 답이 없었네

[주장] '청년을 만나다'란 부제까지 달고있지만, 부실한 청년론만 보이는 <황교안의 답>

등록 2018.09.02 19:54수정 2018.09.0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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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2017년 2월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기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의 창업출정 난타 공연을 보고 있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2017년 2월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기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의 창업출정 난타 공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1일 <황교안의 답>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냈다. 오는 7일에는 출판기념회도 열 예정인데,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펴내고 관련 행사를 여는 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는 정치인의 일반적인 행보이기 때문에 관심이 쏠린다.

'황교안, 청년을 만나다'라는 책의 부제는 더 인상적이다. 매체들은 이 책을 '황교안이 청년 세대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청년'이라는 기호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진 청년시민의 일원으로서,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로 떠오르기도 했던 황 전 총리가 '청년'론을 꺼내든 까닭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두께도 얇고, 여백과 사진도 많은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여기에 '청년'론이라고 이름 붙이기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평을 통해 내용을 분석할 만한 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표제는 '황교안의 답'이지만 이 책에는 답이 없고, 부제는 '청년을 만나다'지만 황 전 총리가 청년을 만났는지 의문이다.

[하나] '황 사장님'의 끝없는 TMI, 청년은 들러리인가

 <황교안의 답> 겉표지.
<황교안의 답> 겉표지.여운

"저는 이 책을 다양한 기회에 청년들과 만나 꾸준히 나누어 온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제가 주장하거나 전달하고 싶은 내용보다는 주로 청년들이 궁금해 하고, 필요로 하는 화제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나눈 이야기들입니다." (9쪽)

서문에서 황 전 총리는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보다는 '청년들이 듣고 싶은 것'을 주로 담았다고 분명히 적었다. 그러나 책에 실린 청년의 질문과 '황교안의 답'을 보면 그가 말하고 싶은 것과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 그의 가족과 학창시절, 친구, 업적 등의 얘기를 직접 써 놓은 첫 장을 지나 본격적으로 문답이 시작되는 두 번째 장으로 들어가도, 청년들의 질문은 신변잡기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다. 독자들은 황교안에 대한 TMI(Too Much Information, 과도한 정보)를 대거 획득하게 된다.


청년들은 황교안이 "검사 시절에 색소폰 음반을 내셨다는 이야기"(44쪽)를 어떻게 용케도 알고 질문하고, "함께 도우며 사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50쪽)다며 일화를 소개해 달라고 먼저 묻는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는데, 청년들이 알아서 비위를 맞춰 질문을 해 주는 이 구도 너무 익숙하다. 직장 문화를 그린 드라마에는 꼭 한 번씩 등장하는 체육대회 에피소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사원들의 단합을 위해 체육대회를 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사장이 속한 팀이 이기게 되도록 사원들이 알아서 '기어 주는' 상황이 <황교안의 답>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청년들과 황교안 전 총리가 만난 특정한 행사에서 나온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책은 아니다. 국무총리 재임 시절 등 본인이 청년들과 만나 나눴던 여러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서 담았다고 하니, 사실 여기 나온 청년들의 질문이 실제로 나왔던 질문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도조차 없다.

어쨌든 이 구도는 정치인들이 청년과 만나는 행사에서 취해 왔던 특정한 태도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찝찝함을 남긴다. 청년과 대화하고 있다는 이미지만 챙기고, 청년을 사실상 완전히 들러리 세우는 것 말이다. 특히 <황교안의 답>에서 "한마디로 '개혁지향정부'"(93쪽)였다고 옹호되고 있는 이전 정부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청년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청년들의 자유로운 질문을 제한하려 시도해 여러 차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2012년 8월 5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20대 정책토크'에서 정치적인 '까칠한 질문'은 자제하라는 요구가 나왔으며(관련 기사 : [단독]박근혜 측 "까칠한 질문 빼라" ), 같은 해 10월 31일 한국외대에서 열린 '대학언론인과의 대화' 행사에서도 일반 학우들의 참관을 거부하고 재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태도를 보임으로써 비판을 받았다(관련 기사 : 박근혜 후보 전국의 대학언론인들과 인터뷰, 곳곳에 나타난 아쉬움).

[둘] '새벽이슬' '도전정신'... 그래서 청년 문제가 뭡니까?

"청년은 '새벽이슬'입니다. (...) 청년은 날마다 새로운 활력을 가진 세대입니다." (56쪽)
"청년에 대한 국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청년 예산이 많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청년을 위한 인프라 투자와 재정 투입에 대한 정부와 시민 사회의 관심 모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다만 청년들에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62쪽)


사실 이 책은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황 전 총리의 지지자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청년을 만나다>라는 부제까지 달고 책을 썼는데, 어쩌면 곧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입문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최소한의 기대치를 무너뜨린다. 청년은 앞날이 창창한 세대라느니, 청년 예산이 더 필요하다느니, 그렇지만 청년들도 노력해야 한다느니 하는 얘기는 길 가는 어르신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할 수 있을 법한 얘기에 불과하다.

청년들을 '부둥부둥'하는 식의 글쓰기는 황 전 총리가 청년을 긍정함으로써 자신도 청년에게 긍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청년 세대가 "정보를 얻고 납득하면 바르게 선택한다"(58쪽)는 식으로 긍정적인 면을 반복적으로 부각한다. 무턱대고 청년들이 아주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치켜세워주면서 도전 정신을 강조하는 방식의 발화다.

사실 이러한 관점은 실크세대, G세대 등으로 이어져 온 보수 진영의 청년세대담론 계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담론들이 최소한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또 상대 진영의 다른 청년 담론을 비판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했다고 치면, <황교안의 답>에서는 청년 문제를 정의하지도 않았다. 정의하지도 않았으니 답할 방도도 없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17년 2월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기 졸업식에서 졸업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17년 2월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기 졸업식에서 졸업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지 않아도 청년들의 상대적인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추경으로도 2.9조 원의 청년일자리 예산을 투입하는 등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년 문제의 정의와 해법, 관련 정책의 방향을 놓고 벌여온 지난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축적된 관련 담론의 크기도 커졌고 정책 당사자인 청년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아마도 보수 진영의 예비(?) 정치인으로서 자신에게 덜 호의적일 것으로 여겨지는 집단인 '청년'을 끌어안고 싶었다면, 대책 없는 청년 예찬이나 "기승전 청년"(165쪽) 타령보다는 구체적으로 청년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는지를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청년 유권자를 존중하는 태도란 결국 이들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를 그 결과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었어야 했다.

[셋] 한물간 안철수식 '청년 멘토'... 공허하다

부실한 책을 통해서 황교안은 청년들의 멘토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부모 세대가 "좋은 멘토가 되"(153쪽)어야 한다고 말하고, 청년들이 "그럴수록 기성세대와 충분한 대화와 스킨십을 나눠야"(62쪽)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황교안의 답>은 청년들을 완벽하게 멘티의 자리, 즉 일방적으로 조언을 구하고 경청하는 자리로 밀어내버린다. 과거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청년의 멘토로서 자기 이미지를 높이며 정치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멘토' 열풍 자체가 이미 너무 한물간 유행이다.

이미 '보수'라는 단어로 결속되어 있는 일부 청년들과는 멘토-멘티 놀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에 뛰어들어 뭐라도 해보려면, 이미 자기 편인 일부 청년들 말고도 다른 청년들,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황교안의 답>은 그에게 호의적인 진영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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