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가 '선별적'으로 '허락된' 대학에서 우리는 민주적 인권센터를 원한다> 지난 10월 1일, 대학 학생회 및 학생단체 18개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인권센터 관련 성명
예진
교육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97개 대학 중 인권센터가 설치된 학교는 19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인력과 예산이 충분하지 않고 권한이 약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서울대학교(H교수 사건), 연세대학교(A교수 사건) 등 인권센터가 설치된 대학에서 교수에 의한 갑질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것은 단순히 센터 설치만으로 대학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학생들은 교육부의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권고만으로 대학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각 대학 별로 인권센터에 대한 상황은 큰 차이를 보인다. 동국대학교의 경우, 현재 인권센터에서 규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인권센터에서 자체적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이를 학생들에게 공개할 수 없도록 차단하여, 운영위원회의 폐쇄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모든 구성원과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하며 '민주적 인권센터 운영을 위한 10대 학생 요구안'을 전달하였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17년도에 인권상담소를 신설하면서 기존 성평등 센터, 장애학생 지원 센터 등을 인권센터 산하 기구로 편성하였다. 그런데 인권센터에서 학생들에게 ME TOO를 자제하라는 메일을 발송하는 등, 2차 가해를 자행하여 기구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 최근 인권센터가 설치되었는데 인력과 예산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도 최근 인권센터가 설치되었는데, 규정이나 내용 등이 학생들에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명지대학교, 서경대학교 등은 성폭력 센터, 성폭력 상담소 등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운영 방식을 전혀 알 수 없다고 한다.
▲동국대학교 <민주적 인권센터 운영을 위한 10대 학생 요구안 전달 기자회견>동국대학교에서 지난 8월 30일, 인권센터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학생 요구안을 발표, 전달했다.
예진
이처럼 대학 별로 인권센터 등 인권,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기구는 명칭과 운영 방식이 상이하다. 이에 따라 각 대학에서 학생들의 세부 요구 또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학생들은 인권센터에 대한 요구가 결코 개별 대학의 문제로 분리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학생들은 인권센터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대학에서 학생들이 논의의 주체로 설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 인권 기구 또한 대학의 권력관계에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공동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8월 교육부에서는 '교육 분야 성희롱, 성폭력 근절 자문위원회'의 권고안 중 인력 및 예산 확보, 학생 참여, 피해자 보호 절차 개선, 추가 피해 예방 등의 내용을 제외하고 일부만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공동성명을 낸 대학 단위들은 현재, 학생들이 원하는 인권센터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자, SNS에서 인증샷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권리가 '선별적'으로 '허락'된 대학에서 우리는 민주적 인권센터를 원한다
[전문] 대학 단위 공동 성명 |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선언하며 각 대학가에선 미투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이어졌다. 대학 내 성폭력은 사회 내 많은 성폭력들이 그러하듯 젠더와 위계 권력이 총체적으로 엮이며 발생했고, 구성원들은 가해자를 재생산하는 공동체에 조용히 귀속되기를 거부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학생들은 피해자의 치유와 복귀,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공동체적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학 질서에 저항하며 가해 교수 파면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으나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한 대학은 없었다. 정직 3개월에 그치는 솜방망이 징계와 학교 구성원을 배제한 체 진행된 폐쇄적인 해결 과정은 성폭력이 발생했던 권력 작동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성폭력 상담소, 양성평등위원회, 인권센터 등의 존재 유무를 떠나 그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민주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폭력의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 본부로부터 독립적인 인권센터 설립, 개혁하라
학교 당국이 그렇게도 가해 교수를 파면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2차 가해를 자행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결국 우리가 우려했던 "권력"의 이해관계 한가운데서는 그 권력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이유도 없었다. 성폭력 가해자와 해결 담당자가 동일하다는 모순 속에 그동안의 학교가 자정능력이 없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명백했다. 주요 의사 결정기구가 보직 교수, 이사회에 국한되는 이상 바뀔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미투 운동의 작용으로 반성폭력 전담기구의 필요성이 사회 내에 공유되었고 대학의 경우 인권센터의 설립, 개혁을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대학 당국은 권력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인권센터를 설립 개혁하고 이것으로 만족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름만 "인권"을 내세우고 있다고 하여 이것이 학교의 다른 권력 기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학교 본부와 교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절실하다.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조차 무시되는 구조에선 공허한 외침만이 의미 없이 소모될 뿐이다. 우리가 운동으로 바꾸고자 하는 대학은 배제된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된 대학, 성차별 성폭력 문화가 근본부터 뿌리째 뽑히는 대학이다. 학내 구성원들이 독점된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을 때, 사건 해결 기구들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발언권과 통제권을 제한받지 않을 때, 공동체는 변화할 수 있다. 학생 참여가 보장된 인권센터의 설치와 개혁 실현이 절실하다.
미투 운동 이후, 대학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넘어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제언 이후에 변화를 촉구하는 수많은 움직임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직 '위력은 존재했으나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가해는 아니다'고 하는 사회에서 생존하고 있다. 대학 내 문제는 곧 사회 전반의 문제와 맞닿아있었고 우리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실천을 대학 공동체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말로만 개혁을 추진하고 해결을 유보하는 학교와 사회 권력을 규탄하며 공동행동에 돌입한다.
하나, 대학은 발전, 확대된 미투 운동에 실질적인 변화 실현으로 응답하라. 절차와 법을 논하며 가해자를 감싸준다고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와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하나, 학생 주도의 인권센터 설치 개혁을 통해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민주적 인권센터 만들자. 권력의 근원인 학교 당국 주도의 설립과 개혁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배제된 구성원들이 존재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권센터가 필요하다.
2018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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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이후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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