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 작가
미디어눈 은성작가
평생을 모아두었던 돈이 사라졌다. 정부는 인심을 쓰는 것처럼 1인당 500원씩을 추가로 지급했다. 식구가 다섯인 우리 집은 2,500원을 더 받아 일주일 만에 전재산이 3,500원으로 줄었다. (한 집당 최대 환전 가능 금액은 천 원이며, 1인당 500원씩 다섯 식구가 2,500원을 더 받아 전 재산이 3,500원)
2009년 화폐 개혁을 단행한 날, 쌀 1kg의 가격은 18원이었다. 그런데 시간 단위로 물가가 치솟기 시작해 저녁때는 30원, 세 시간 후에는 35원, 다음날이 되니 100원, 다음날 점심에는 120원으로 올랐다. 2010년 7월 내가 탈북한 그 해 마지막으로 보고 온 쌀 가격이 1,050원이었다. 집 전 재산이 3,500원인데 쌀 1kg이 1,050원인 것이다.
한 끼 먹기 위해 안간힘
속으로 욕이 나오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다. 아니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체제에서 평생을 살아왔어도 인간으로 느껴지는 억울함과 분노가 있었다. 말을 안 할 뿐 이미 김정일 개××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북한 주민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올라왔고 더는 국가를 신뢰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주민들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정부는 꼭 총대를 멜 한 사람을 내세운다. 그때도 화폐 개혁을 멋대로 주도했다는 혐의로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총살을 당했다. 하지만 북한 체제에서 김정일 결재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다 아는 일이다. 북한 주민도 그런 쇼를 믿지 않는다.
북한 정부의 감언이설을 믿지 않는 청년들의 희망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군대나 대학교에 가지 않은 청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나섰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끼 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가장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노력(노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막노동으로 돈을 번다. 우리 동네에는 시멘트 공장과 가구 공장 단지가 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은 조립을 하고 어떤 사람은 도장(塗裝)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만들어진 완성품을 운반하는 일을 한다.
물건을 운반하는 방법도 소득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차로 운반하는 사람이 있고 구루마(리어카)에 싣고 가는 사람도 있고 몸으로만 지고 운반하는 사람이 있다. 청년들은 이런 일에 투입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일당은 쌀 1kg도 안 된다. 이 쌀 1kg으로 네 식구의 하루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 죽어라 일해도 한 끼도 해결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도 별의별 일을 다 해봤다. 가구도 만들어보고, 꽃게잡이 배도 타고, 아버지 따라 장사도 나갔다. 아버지가 탈북을 생각한 것도 나의 고생을 보면서 시작된 것 같다.
<다음화에서 계속>
취재. 글: 조은총 에디터 l 삽화: 은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