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에디터
김하늘
(지난 회에서 이어집니다.)
결국, 학교도 힘들고, 서울 생활도 힘들어서 안산으로 이사를 가서 전학도 갔는데, 그때 소위 말하는 양아치 짓을 시작했지 뭐야.
학교에서 북한 출신 사람을 처음 본 아이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놀리며 괴롭혔어. 그런데 말했듯이 너처럼 2살 아래의 아이들과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녔거든. 그러니 또래보다 덩치도 큰 데다가 북한에서 친구들과 하던 전쟁놀이 기억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한 거야.
내가 나쁜 짓을 하도 많이 하니까 결국 다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어. 다시 서울 고대부중으로 전학을 갔어. 그런데 한 번이 어렵지 계속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싸움하는 놈'이 되어가고 있더라고. 학교 끝나고 나가면 정문에도, 후문에도, 나랑 싸우겠다는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어. 나조차 나를 '싸움하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됐지. 그런데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참고 기대하고 격려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중학교 선생님들이야. 담임 선생님과 교과목 선생님들 모두 참고 기다리며 나를 격려해주셨어. 수업시간이면 한 번이라도 이름을 더 불러주고, 토닥여주셨는데 그분들의 작은 사랑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기 시작했어. 서서히 불량한 모습이 사라지고 잘 커서 동성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지.
학교 이름들이 모두 익숙하지? 나부터 시작해서 우리 그룹 홈 친구들은 모두 이 학교에 다니거든. 고대부중, 동성고. 아마 너도 그럴 거야. 그리고 우리 그룹홈에서 고대부중 전교 회장도 나왔고, 지금도 동생 중에 반에서 반장을 하는 아이들도 있어. 너도 내가 거닐었던 교정에서 사랑받으며 신나게 학교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
아, 맞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야. 혹시 삼촌이 말하지 않았니? 그룹홈에 양아치가 하나 있었는데, 주짓수,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넣어버렸다는 전설 말이야. 그게 바로 나야. 더 잘 싸우고 싶어서 운동시켜달라고 그렇게 졸라댔더니 미술학원으로 보내버렸거든. 그때는 진짜 운동을 배우면 큰일 낼까봐 그랬던 것 같아.
근데 의외로 미술이 재밌더라? 미술에 빠져서 그림 그리는 봉사활동도 하고, 심지어 전시회까지 열었다니까? 성북구에서 한 번, 인사동에서 두 번, 갤러리를 열었어. 내가 뭔가를 세상에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더라고. 봉사활동 자체에도 재미를 붙여서 봉사활동도 더 자주 하게 됐고.
탈북자도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