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출신인 걸 학교에서 말할까 말까 고민된다고?

[탈북청년 7] 함흥에서 온 임강빈 형이 신포에서 온 은휘에게 띄우는 편지 (하)

등록 2018.10.08 07:53수정 2018.10.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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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입국한 3만 명의 탈북자 중 대다수가 청년이다. 하지만 학교, 직장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탈북'이라는 꼬리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큰 무게이다. 북한이라는 뿌리 없이 이들의 삶을 말할 수 없지만, 이제는 탈북자보다는 한국인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7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탈북청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기사에 사용된 이름, 나이, 지명은 북에 남겨진 가족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말
 
 김하늘 에디터
김하늘 에디터김하늘

(지난 회에서 이어집니다.)

결국, 학교도 힘들고, 서울 생활도 힘들어서 안산으로 이사를 가서 전학도 갔는데, 그때 소위 말하는 양아치 짓을 시작했지 뭐야.

학교에서 북한 출신 사람을 처음 본 아이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놀리며 괴롭혔어. 그런데 말했듯이 너처럼 2살 아래의 아이들과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녔거든. 그러니 또래보다 덩치도 큰 데다가 북한에서 친구들과 하던 전쟁놀이 기억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한 거야.

내가 나쁜 짓을 하도 많이 하니까 결국 다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어. 다시 서울 고대부중으로 전학을 갔어. 그런데 한 번이 어렵지 계속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싸움하는 놈'이 되어가고 있더라고. 학교 끝나고 나가면 정문에도, 후문에도, 나랑 싸우겠다는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어. 나조차 나를 '싸움하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됐지. 그런데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참고 기대하고 격려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중학교 선생님들이야. 담임 선생님과 교과목 선생님들 모두 참고 기다리며 나를 격려해주셨어. 수업시간이면 한 번이라도 이름을 더 불러주고, 토닥여주셨는데 그분들의 작은 사랑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기 시작했어. 서서히 불량한 모습이 사라지고 잘 커서 동성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지.

학교 이름들이 모두 익숙하지? 나부터 시작해서 우리 그룹 홈 친구들은 모두 이 학교에 다니거든. 고대부중, 동성고. 아마 너도 그럴 거야. 그리고 우리 그룹홈에서 고대부중 전교 회장도 나왔고, 지금도 동생 중에 반에서 반장을 하는 아이들도 있어. 너도 내가 거닐었던 교정에서 사랑받으며 신나게 학교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

아, 맞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야. 혹시 삼촌이 말하지 않았니? 그룹홈에 양아치가 하나 있었는데, 주짓수,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넣어버렸다는 전설 말이야. 그게 바로 나야. 더 잘 싸우고 싶어서 운동시켜달라고 그렇게 졸라댔더니 미술학원으로 보내버렸거든. 그때는 진짜 운동을 배우면 큰일 낼까봐 그랬던 것 같아.


근데 의외로 미술이 재밌더라? 미술에 빠져서 그림 그리는 봉사활동도 하고, 심지어 전시회까지 열었다니까? 성북구에서 한 번, 인사동에서 두 번, 갤러리를 열었어. 내가 뭔가를 세상에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더라고. 봉사활동 자체에도 재미를 붙여서 봉사활동도 더 자주 하게 됐고.

탈북자도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김하늘 에디터
김하늘 에디터김하늘

그리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거든. 왜 갑자기 봉사하다가 부자가 되고 싶어졌느냐고? 봉사자들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런 착한 사람들이 더 좋은 일을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야. 나도 그림을 그릴 때 물감, 브러시 등을 누가 기부해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봉사활동을 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서 돈을 벌어서 좋은 일 하려는 사람들이 마음껏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용한 서포터가 되고 싶어졌어. 


대학에 와서도 봉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경험이 참 소중했던 것 같아. 지금은 그림보다 운동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운동으로 어떻게 봉사활동을 하느냐고? 내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거든.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과 신나게 축구를 하고 오는 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 시작했을 때 만났던 아이들이 고1이었는데 지금 그 친구들이 운동이 좋다면서 체대로 진학하는 것을 보니까 굉장히 뿌듯하더라고.

하지만 가끔은 봉사하는 것이 알려져서 부담스럽기도 해. 어느 날은 마로니에 공원에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네가 강빈이지!' 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고 날 기억하셨나 보더라고.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거는 게 굉장히 신기하면서 충격이었어. 그 이후로 행동에 더 신중하려고 해. 그리고 이렇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더 순수하게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리고 삼촌한테 들었는데 은휘 너 요즘 고민이 있다며? 학교에서 북한 출신인 것을 말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고 들었어. 탈북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불쌍하게 생각하잖아. 생사의 길을 넘어왔고, 고향에서도 힘들게 살다 왔으니까. TV에서는 그냥 불쌍한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고민이 있었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탈북자'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어. 우리도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이야. 내가 찾아낸 방법은 영화였어.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에 와서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룹 홈 삼촌과 함께 사는 친구들끼리 직접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 가족>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야. 이건 비밀인데, 흥행이 실패해서 삼촌 마음이 조금 아팠어. 흥행 욕심은 없었는데 행복하게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많이 못 알려져서 아쉬웠거든.

대신 나중에 책을 썼어. 고향에 대한 추억을 담아서 쓴 책인데, 제목이 <밸이 난다>야. 갑자기 고향 말을 들으니 정겹지 않니? 어느 날 그룹 홈 막내가 화가 잔뜩 나서 '밸이 난다, 밸이 난다'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책 제목으로 정했어. 우리가 표지 디자인부터 원고 작성과 편집을 다 했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어. 이 책을 쓸 때는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문화 예술을 통해 자아를 찾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요즘은 '통일 수다방'이라고, 통일과 북한 이탈 주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야. 이제 시작단계이고 삼촌이 출연해서 이야기하고 내가 편집을 하고 있어. 참 재밌는 일이 많지? 은휘도 앞으로 재밌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야.

널 도와줄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잊지 마
 
 김하늘 에디터
김하늘 에디터미디어눈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형도 못 하는 게 있다? 가끔 삼촌이 형 자랑을 심하게 하면서 너무 기죽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F 학점이 3개였거든. 학점 2.1점이었어. 은휘는 아직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못 한 거야.

형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더 다양한 활동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변명은 절대 아니다! 형도 공부하면 잘하거든! 2학년 때 2.3점, 3학년 때는 3점대로 올라섰어. 형도 성적을 계속 올릴 테니, 은휘도 한국에서 잘 지내보는 거다?

은휘는 공부가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하면 안된다. 가끔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중도 포기하는 탈북 친구들을 만나. 대학에 들어갈 때는 탈북민 전형으로 조금 더 수월하게 들어가지만,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퇴를 하는 거야.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기 어려웠거나, 스스로 일을 계획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 있으니까.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혼자 끙끙대기보다는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내는 것도 좋아.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성적이 다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며 경험을 해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도 찾으며 살다보면 잘 성장해 있는 너의 모습을 보게 될 거야.

이제 막 한국에 들어온 너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나? 직접 만나서는 해줄 이야기는 더 많은데! 다른 건 다 잊어도 딱 한 가지만 기억해줘. 내가 나쁜 길로 빠질 뻔할 때 나를 구해줬던 선생님의 믿음이 있듯이, 어딘가에는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너무나 힘든 날에도 네가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에 너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마. 그중에 한 명, 나도 있고 말이야!

형이 곧 삼촌이랑 친구들 보러 갈게. 그때 만날 땐 은휘가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들려주렴! 파이팅!

2018. 10. 5
강빈 형이.
 
 미디어눈 은성 작가
미디어눈 은성 작가김하늘
덧붙이는 글 취재, 글, 삽화 : 김하늘 에디터
미디어눈 팀 블로그에도 연재중입니다. https://brunch.co.kr/@medianoon/23
미디어눈은 "모든 목소리에 가치를"이라는 비전으로 활동하는 청년미디어입니다.

10월 LINK(Liberty in North Korea)와 함께 영화 '장마당세대'와 영화 출연자, 탈북청년 취재원들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준비중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사전 설문조사에 참여해주시면 자세한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https://goo.gl/forms/mLtrnQ7x0oIgZIWy2
#미디어눈 #탈북청년 #탈북 #청년 #그룹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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