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처음 보는 광경이 정말 인상 깊었던 것 같아. 사실 생각하면 위기에 순간에서 그런 낭만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을 텐데 너무 어릴 때여서 순수함이 더 컸던 것 같아. 그날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데 엄마랑 나랑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는데, 다음 날, 말 타고 국경을 지키는 몽골 군인들이 우리를 발견한 거야.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감옥에 갇혀 난민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며 감옥 생활을 했고, 3개월 후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온 거야. 그때부터는 너도 겪어봤겠지만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가족들 모두 독방을 쓰면서 몇 달 동안 세밀한 조사를 받았어. 그 후에는 네가 그룹홈 오기 직전에 머물렀었을 하나원에서 지냈고.
한국 생활이 쭉 행복했냐고?
형이 한국에 온 지가 10년이 지났는데, 아마 요즘도 비슷하지? 은휘는 어땠니?
아직도 하나원 생활은 기억난다. 신용카드 만드는 법처럼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을 가르쳐주잖아. 난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국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어. 바로 전국일주야. 내가 12살 때인 2005년 12월에 한국에 왔고, 2006년 2월에 그룹홈 삼촌을 처음 만났거든. 삼촌하고 같이 산지 10개월쯤 됐을까, 삼촌이 여행을 떠나자고 했어.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 지리도 잘 알아야 하고, 직접 보고 겪어야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다며 여행을 떠났지. 12월부터 3월까지 무려 4개월을 돌아다녔어.
겨우내 걷고 버스 타면서 섬 빼고 거의 전국을 다 돌았지. 바닷가 마을들을 따라 전국을 한 번 돌고, 또다시 인천에서부터 전국 곳곳을 다녔어. 날씨도 춥고 고생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행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던 나에게는 모든 순간이 너무 좋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야.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아, 그래서 한국에서 생활이 그 후로 쭉 행복했냐고? 사실은 아니야. 학교 가서 사고를 많이 쳤거든. 은휘도 12살인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 다시 시작한다던대, 맞니? 나도 13살 때 4학년부터 시작했으니까, 학교 가면 2살 아래의 친구들을 사귀겠구나. 그래도 요즘은 남북 정상회담도 열리고, 한국 사람들이 탈북한 우리들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긴 해.
그런데 형이 처음 학교에 갔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 처음 가는 학교도, 새로운 친구들도 무서웠고, 나도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었거든. 처음에는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왕따를 심하게 당했어. 게다가 바쁜 엄마를 대신해 그룹홈 삼촌이 나를 키워줄 때 우리 한 달 생활비가 20만 원이었어. 결국 학교 적응도 힘들고, 서울 생활 자체도 너무 힘들어서 안산으로 이사 가서 전학도 갔는데, 그때 소위 말하는 양아치 짓을 시작했지 뭐야.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