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앨라이 인터뷰에 참여 중이신 박진영 목사님
비온뒤무지개재단
-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 소수자들이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셨다는 소개를 보았어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회의 소수자들이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늘 공평히 나누고, 어려운 분들을 더 챙기는 모습을 자주 보았어요. 크게 의식하며 자라지 않았는데 돌아보면 그런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살면서 많은 경험들이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많이 키워준 것 같아요. 청소년 시기에 교회에서 장애인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경험을 했어요. 그 덕분에 목회를 하면서 장애인 어린이나 학생들을 대할 때 예외로 생각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중요한 멤버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대학생 때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봉사 등 뭔가 큰 결심을 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놓일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사회의 소수자들, 억압과 차별과 가난 속에 있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오기도 했죠."
-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2008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 시기가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반동성애 운동이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것 같아요. 연일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인 내용들이 많았어요.
당시 제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괴리감이 엄청 컸죠. '둘 중의 하나다. 저런 소식들이 거짓이든지,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성소수자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든지.'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서 확인하리라 마음먹었죠. 샌프란시스코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요."
- 미국에서 성소수자들과 관련한 특별한 경험이 있으셨나보군요.
"정말 많았어요. 저는 미국에 가기 전까지 성소수자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그런데 영어선생님 중 한분이 첫 수업에서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하시며 수업을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게이인게 나랑 무슨 상관일까 싶었는데, 나중에 그분이 그렇게 학생들에게 커밍아웃 하는게 얼마나 큰 용기이며 멋진 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페이스북에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주 올려요.
또 대학원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하루는 자기 여자친구라며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보통 동성친구는 그냥 '친구'라고 소개를 하는데, 자기가 여자이면서 굳이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니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 친구가 자기의 애인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예쁘지 않니?'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저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저도 아무렇지 않았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을 아무에게도 숨기지 않았고, 작품에도 퀴어한 요소들을 반영하기도 했었어요.
결정적으로 한 이론 수업에서 어떤 학생이 미묘한 여성 차별적 발언을 했는데, 아무도 딱 꼬집어서 비판하지 못했어요. 그냥 넘어갈 뻔 했는데 한 남학생이 자신을 게이라고 소개하며 왜 그 발언이 차별적인 것인지 조목조목 얘기하는 거예요. 그 순간에 세상이 달리 보였어요. 여성이 경험하는 미묘한 차별을 느끼는 남자가 존재할 수 있다니. 그때부터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이 여성이 사회에서 이등시민 취급 받으며 경험하는 차별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아까도 유학생활이 끝나고 한국에 오셔서 목회자 일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많이 다르죠. 특히 교회는 더더욱. 쉽지 않은 생활이셨을 것 같아요.
"교회에서 왜 이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의 선생님이거나 친구이거나 동료였으니까요. 그래서 한번은 반동성애 쪽에서 주장하는 성경본문을 모두 찾아서 번역서들을 모두 비교하고, 주석서들도 찾아보고, 참고할 책들을 찾아 읽어보며 제 나름대로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해 보았어요. 물론 제가 미국에서 경험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지요. 아무리 살펴봐도 성소수자를 차별할 수 있는 근거는 발견하기 어려웠어요. 오히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했던 예수의 말이 더 크게 와 닿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해한 대로 얘기 했어요.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한번은 어떤 모임에서 저에게 동성애 관련 강의를 요청하셔서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언급하면서 한국교회가 이들을 환대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강연을 했는데, 그 일로 담임목사님과 신뢰가 깨지게 되었어요. 평소 담임목사님이 하시던 말씀과 반대되는 얘기를 하려고 했을 때, 단단히 각오를 했었어요. 만약 이 일이 문제가 된다면 교회를 떠나리라."
- 그런 상황에서 교회에 계속 계시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어요. 각오는 했지만, 그 일로 담임목사님 뿐만 아니라 다른 목회자님들과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어요. 소외감을 많이 느꼈고, 우울감이 엄청났어요. 그 때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어요. 당장이라도 그만둘 생각으로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솔직한 심정을 모두 말씀드렸고, 그때 비로소 목사님께서도 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이해해주셨어요. 서로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지만, 마음이 다 풀렸지요. 그 이후로 목회 대신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전직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웹퍼블리싱을 배웠고, 사임 이후에 앱디자인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죠."
- 사실 그런 식의 갈등을 겪고 나면 힘이 빠져서 활동을 접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성소수자 옹호자로 교회에서 문제가 되어서 사임을 하니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임보라 목사님의 강연을 처음 듣게 되었고, 비로소 기독교인과 목회자 중에서도 나를 이해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기뻤던 것 같아요. 임보라 목사님을 통해서 무지개예수(성소수자 기독교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를 알게 되었고,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아는 사람 거의 없어서 임보라 목사님 한분 믿고 육우당 추모기도회에 참여했고,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찬집례도 함께 했었어요. 덕분에 뜻을 함께 하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되고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 오히려 그런 결심하셨기 때문에 로뎀나무그늘교회와 함께한 시간이 있을 수 있으셨군요.
"맞아요. 처음 로뎀에서 저를 담임목사로 불렀을 때, 상상도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기 보다는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 때는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다른 면들에서는 잘 준비된 목사가 아니었지만,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 로뎀에서 한 활동이 많으셨어요, 홈페이지를 보니 세미나나 공부도 엄청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교회에서 강의도하고 이를 통해 '성소수자 바로알기'와 같은 책자도 만드셨고요.
"성소수자 교회의 목사로서 가지는 책임감이 컸던 것 같아요. 성소수자 관련된 강연이라면 뭐든 찾아다니며 다 들었고, 관련된 뉴스나 소식도 빠짐없이 찾아보고, 책들도 나오는 대로 사서 읽었어요. 더욱 구체적으로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상황을 알게 되었어요.
또한 훌륭한 활동가분들과 전문가 분들을 많이 알게 됐고,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해서 모두가 성소수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성소수자 바로알기 프로젝트'는 당사자가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나아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가 자기 자신의 이슈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아요."
"성소수자 바로알기, 또 다른 차원의 인간 이해"
- 공부를 해보시고 나시니 어떠셨나요?
"저 개인적으로는 인간 이해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느낌이었어요. 단순히 성소수자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달라지게 되는 거죠. 서로 다른 타자를 어디까지 수용하고 환대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내 자신을 실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성학을 공부했고, 그 이후로 모든 삶에 그러한 관점을 적용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퀴어 이론은 또 다른 차원의 인간 이해를 열어주었어요. 이러한 관점에 눈이 열리니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다 연결되는 것 처럼 더 가깝게 다가왔어요. 한 인간을 어느 한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고,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아니 그보다 더 복잡하고 우린 아직 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인 거죠. 그게 신비인 것 같아요. 이런 앎들이 진짜 주어진 선물 같았어요."
- 이외에 혹시 성소수자 목회를 하시면서 느꼈던 점이나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정말 많지만, 두 가지만 얘기하자면 오랫동안 소수자 활동을 계속해 오신 분들 중에서는 성품이 매우 뛰어난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을 기꺼이 기쁨으로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뭘까 궁금하기도 하고, 인권활동 오래 하신 분들 보면서 참 여유 있고 마음이 말랑말랑 하시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본받고 싶고 존경스러워요.
두번째는 성소수자도 사람이고 그 안에 개인차와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아웃팅을 당하거나 커밍아웃을 했으나 원치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또 혐오와 차별적 발언도 견디기 힘들지만, 커밍아웃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분들은 혹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차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일상의 스트레스도 엄청나지요. 하루 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