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정파성을 가르치다

[언론을 배우다①] 들어가며

등록 2019.01.30 18:40수정 2019.01.3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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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정파적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말을 학생들에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학부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언론을 배웠지만, 10년 만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전공 강의에서 언론과 정파성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만약 현실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우리가 왜 보수인가요? 한겨레신문 기자가 왜 진보신문이라고 부르냐고 묻는다면 기존문헌을 통해, 기존 보도를 통해 대략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수업에서는 아니었다. 또 혹자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 종사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처음으로 듣게 되는 <커뮤니케이션 개론> 강의에서는 꼭 설명해야 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납득시킬 수 있는 그런 뉴스를 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파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고민해봤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뉴스를 모바일과 PC로, 포털사이트를 통해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대충 어느 언론인지, 제목과 소제목만 읽어도 어떤 내용일지 예측할 수 있다.

뉴스를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정파성에 대한 사례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쟁점사항 즉 대북 문제, 경제 정책, 노동, 인권 등의 키워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수업에서 말하기 위해선 설명력이 높은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또한 주제나 키워드가 아닌 특정 시점이나 상황에서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문재인 대통령 당선 및 취임일에 살펴봤던 5대 일간지(조·중·동·경·한)의 사설이 떠올랐다. 2017년 5월 9일과 10일의 이 사설들은 헤드라인만 읽어도 같으면서 다른 느낌을 준다. 상황도, 목적도, 내용도, 단어도 비슷한데 말이다.

그래서 설문 형태의 설명을 준비했다. 아래의 <그림 1>을 살펴보면 일부 사설의 경우 헤드라인만 봐도 어느 신문사의 것인지 보이지만, 모든 출처를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강생들에게도 18개의 사설을 보여주고 각 헤드라인만 보고 진보, 중도, 보수 성향 중 어느 신문사의 보도인지 판단해보라고 했다. 또한 추가적으로 진보/중도/보수 신문의 사설은 각 몇 개인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떠한 기준으로 분류했는지 작성하도록 했다.
 
 <그림 > 언론과 정파성 과제 설명에 사용된 설문지
<그림 > 언론과 정파성 과제 설명에 사용된 설문지이푸름
 
수강생들은 나름의 기준을 바탕으로 진보, 중도, 보수에 대한 분류를 했다. 그 세세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 평소 뉴스에 대한 관심에 따라 중도라고 분류한 숫자엔 차이가 있었다. 이후 사설 내용을 읽게 한 뒤 피피티를 켜 각 사설의 출처를 가르쳐 주고, 18개의 사설을 성향별로 묶어 보여줬다(<그림 2> 참고). 좌측엔 조·중·동을, 우측엔 경·한을 넣은 뒤 글씨 색깔을 다르게 했다. 제호 공개와 분류를 통해 얼핏 보기에도 아까의 하나의 나열보다 정파성이 선명해짐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조·중·동과 경·한을 좌우로 분류한 뒤 색깔로 구분한 자료
조·중·동과 경·한을 좌우로 분류한 뒤 색깔로 구분한 자료이푸름
 
일반적인 수업에서처럼 기존문헌을 바탕으로 개념을 설명하고, 보도 차이를 검증한 프레임 연구 사례를 제시한 뒤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는 식으로 강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그저 교과서적으로 외운다고, 책을 통해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론적으로 언론의 역할과 기능, 윤리와 법제 등을 말할 순 있지만 한국사회 현실에서 언론의 정파성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언론부터, 뉴스부터, 정파성부터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이번 과제를 통해 주제 선정, 자료조사 및 수집, 정리/비교/분석, 보고서 작성이라는 틀을 익히게 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미디어 전공생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실제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개론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 끝에 탄생한 과제는 아래의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생각해보기다.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한국 언론의 정파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보도(사건, 주제)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실제 보도 확인하기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의 10대 일간지를 비롯해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의 방송매체에서 본인이 정한 키워드(보도)를 바탕으로 검색하고, 실제 기사를 읽으며 보다 심층적으로 생각해본 뒤 최종 분석 아이템을 정한다.

세 번째, 기준 정하기로, 본인의 아이템을 부각시킬 수 있는 언론사를 선택해 비교하는 것이다. 기간, 언론사 숫자, 키워드 한정 등의 범위를 설정해 자료 수집을 확정한다.

네 번째, 기사 비교 및 정리다. 각 언론사를 기준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보도량, 제목/소제목, 논조, 형식, 취재원 등을 비교해 특징을 찾아내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한다.

다섯 번째, 마지막으로 분석 결과에 대한 해석을 포함해 기사 또는 칼럼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 보고서와 <미디어오늘>의 아침뉴스 솎아보기를 안내했지만 다들 어려워했다. 최종 강의 평가를 통해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대학원생이 된 것 같았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가 요구한 수준 이상으로 완성했으며, 대부분 기존 보고서와 뉴스를 베끼기보단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 자신이 생각했을 때 정파성이 부각되는 키워드를 찾아 분석했다. 키워드의 예를 들자면 남북정상회담이나 평양공연 같은 평화 관련 주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 쓰레기 대란, 부동산 정책 같은 이슈, 주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일자리 정책 같은 경제 분야 등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방송뉴스보단 신문기사를 선택했으며, 절반 이상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또는 조선·중앙·동아일보 중 2곳과 경향·한겨레신문을 비교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은 이미 정파성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평소 이 문제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처음으로 정파성에 대해 이렇게 고민해봤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또한 다수의 학생들은 '처음으로 언론사 홈페이지에 방문했다'고 할 정도로 포털사이트를 통한 하나하나의 개별 기사 중심으로 뉴스를 접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확인한 언론의 정파성을 정리하자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키워드에서 정파성에 따른 보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공통적으로 정파적 미디어 환경, 언론의 의제설정 효과, 독자의 재사회화 같은 차원에 대한 우려를 보였고, 언론이 독자의 편향된 시각을 이끌어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온 게 아닌지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학생은 '언론은 중립을 지키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기도, 다른 학생의 경우 '언론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히려 현실에서 객관의 기준을 세우는 것과 모두가 한 가지 사안의 동일한 부분에 주목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학생들이 내린 결론은 대부분 독자와 뉴스 리터러시에 주목했다. 독자가 더 현명해져야 한다는 의견부터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적 태도와 이해를 바라기도 했고, 결국 나 자신의 주관을 바탕으로 한 능동적인 정보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 중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는 뉴스 하나를 클릭하는데 걸리는 시간 1초, 내용을 읽는 시간 1분, 하나의 사안에 대해 조·중·동·경·한의 다섯 개 뉴스를 읽는 시간은 5분 정도 걸리는데 다양한 생각과 새로운 인식을 위해 하루 5분 정도 투자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사실 크게 공감했다. 학계에서 말하는 미디어 교육을 통해 뉴스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진, 메시지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동적인 독자를 키워야 한다는 말보다 '같은 사건 서로 다른 뉴스 더보기'가 더 현실적인 구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론을 배우다] 코너는 학생들이 작성한 26편의 기사/칼럼 중 우수 사례 여섯 편을 소개하기 위해 준비했다. 이 코너는 어느 신문이 더 잘했다 못했다 같이 평가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어떤 보도가 선이고 악인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주장에는 근거와 사례를 제시하도록 했고, 최대한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답을 단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하루에도 수천수만 건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미디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언론의 정파성 키워드와 그 내용, 차이에 대한 비교, 이에 대한 고민, 나름의 해답 등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완벽한 분석 기사도, 완전한 칼럼 형태도 아니다. 아니 모든 측면에서 다소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경험하고 지적하고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다양한 독자들이 생각하는 나름의 정파성 극복 방안과 대안 제시를 듣기 위해 이 코너를 시작해본다.
#한국 언론 #정파성 #커뮤니케이션 개론 #언론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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