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비정상회담 캡쳐JTBC 비정상회담에서 MC들이 우크라이나를 '미녀의 나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JTBC
"우크라이나에서는 김태희가 밭을 간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미모가 뛰어남을 뜻하는 오래된 우스갯소리이다. 양국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미녀들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거의 유일한 정보이다.
일례로 한 포털사이트에서 우크라이나를 검색하면 '우크라이나 미녀'가 연관검색어로 뜨고, 2016년 1월 JTBC에서 방영됐던 <비정상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 패널이 자국을 소개하는 키워드로 '미녀'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의 미녀에 관한 글과 영상은 인터넷에 가득하지만, 실제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다. 과연 '미녀'들의 삶은 어떨까? 그들은 이 명성을 좋아할까? 놀랍게도 처음으로 만난 우크라이나 친구는 이를 혐오했다.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우크라이나의 '미녀'들
그 친구와의 대화는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외국인과의 첫 만남에서 다들 그러하듯, 상대국에 대한 지식을 말하고 묻던 중 우크라이나 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기뻐하거나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친구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그는 나의 말을 끊고,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식이 우크라이나에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이유였다. '미녀들의 나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식은 비단 한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이러한 시각은 우크라이나 여성에 대한 각국 남성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며, 비상식적인 국제결혼과 성매매, 심지어 아동 성매매의 창궐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회 연구 기관은 2011년 상업적 성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을 5만 명으로 추정했으며, 그 중의 1/6은 미성년자였다. 더욱이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성매매를 전업으로 하지 않는 여성을 고려한다면 그 수는 더 커질 것이다. 인신매매에 반대하는 유럽의 비정부기구인 La Strada는 우크라이나를 유럽 성매매의 제 1의 원천으로 보았고, 우크라이나는 성매매 관광이 만연한 태국에 빗대 '서양의 태국'이란 굴욕적인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2014년에 발생한 유로 마이단 혁명과 이어진 우크라이나 내전을 계기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성매매 관광에 대한 수요는 줄어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폴리티코'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1월 터키가 러시아의 전투기를 격추시킨 사건을 계기로 터키와 러시아 정부 간 갈등이 깊어지자 러시아로 분산되었던 터키인의 성매매 수요가 우크라이나로 몰리게 되었고, 성매매는 수요층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었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비상식적 국제결혼 또한 지속된다. 한 사이트는 현재도 공공연히 이러한 국제결혼을 중개하고 있으며, '바이스 미디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오데사를 중심으로 한 '결혼 중개업'은 내전 중에도 꾸준히 유지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서방 세계의 태국'으로 전락한 원인들
사실 '미녀들의 나라'라는 표상은 이미 그 자체로서 문제적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외모로만 제한하고, 여성을 연애의 대상으로 국한하는 기존의 여성혐오적 메커니즘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권력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국제적 남성권력 하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 현상의 원인은 '미녀들의 나라'라는 호칭 하에 이미 잠복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가능태는 우크라이나의 사회, 경제적 조건과 만나 현실화되었다. 가장 토대로서, 취약한 경제가 우크라이나의 여성들을 성매매와 국제결혼으로 내몰았다. 많은 동구권 나라들이 그러했듯 90년대 소련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또한, 비교적 최근인 2014년을 기점으로 발생한 혁명과 내전의 국면에서 소득 수준은 하락하거나 유지되는 가운데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적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거나 국제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고 우크라이나를 떠나고자 한다.
경제적 조건은 가부장적 문화와 맞물려 여성들에게 더욱 악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의 급진적 여성단체인 FEMEN(페멘)의 대표 이나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 여성은 고등 교육을 받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성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심화되고, 직업의 선택권이 제한되어 여성들은 '악마와의 계약'을 맺게 된다. 더불어 경찰들의 부패와 미약한 법 집행력은 성매매 산업이 유지될 수 있게 하며, 부작용을 충분히 관리하지 못한 채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경제발전전략 또한 문제를 심화시킨다.
결국 사회 전반의 문제점들이 '미녀들의 나라'라는 표상 아래에서 특정 방향으로 결합하고 발현하는 것이다. 단순한 칭찬처럼 보이는 농담이 연료로 작용해 우크라이나의 성매매, 비상식적 국제결혼을 재생산하고 있다.
"너희들은 이게 우스워?"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 나오는, 사소한 농담으로 고발당한 루드비크를 심문하며 심문관들이 서로 묻는 구절이다. 그 이후로 루드비크는 이 농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로 인해 고초를 겪게 되는 루드비크에게도 그 농담은 더 이상 마냥 우습지 않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농담도 매우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성적 착취를 당하는 이면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 농담은 우스울 수 없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공유하기
미녀의 나라 우크라이나? 그 '명성'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