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섬' 전 작품
강제윤
사진전 '선행학습'을 위해 전시도록을 펼쳤다. 시, 연구, 사진, 시민활동 등으로 종횡무진 섬들을 횡단했던 강 소장의 이력을 잘 드러내 주는 도록이다. 초대의 글은 강 소장의 시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는 섬으로 갔다'이다.
"…(전략)… 섬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처럼 애써 위로하려 들지도 않았다. / 말없이 묵묵히 같이 있어주던 섬. / 그래서 나는 또 남은 생애의 날들에도 더 자주 섬으로 갈 것이다. / 당신 또한 섬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 그 섬이 주저앉은 당신에게 새로운 '일어 섬'이 되어주기를. / 이 사진들이 그 섬으로 가는 입구가 될 수 있기를…"
200자 원고지 40매 분량의 '전시 서문' 또한 강 소장이 직접 썼다. 이스탄불, 로마, 중앙아시아, 무슬림, 아라비아해, 쿠로시오해류 같은 이국의 말들과 신라, 고려, 쌍화점, 조선, 공도정책 같은 우리네 언어들이 가로세로로 엮여 섬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나아가 그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깡그리 무시해 온, 섬의 개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간의 섬 정책을 신랄한 비판하고 있다. 서문의 끝자락에는 '섬과 우리들'에 대한 강 소장의 전망, 호소, 바람이 간절한 담겨있다.
"영토의 3배가 영해다. 그 영해의 중심이 섬이다. 바다로, 섬으로 가면 우리는 더 넓은 세상과 대면할 수 있다. 섬의 길은 어느 쪽으로도 열려 있다. 섬에서 우리는 움츠러들어 있던 정신의 근육을 무한대로 키울 수 있다. 섬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만드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이다. 이 사진전이 섬과 섬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사진을 살펴볼 차례다. 강 소장의 섬 사진들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섬과 바다를 응시하는 카메라 위치의 멀고 가까움은 자유롭다. 하지만 사진이 포착한 '섬'에는 언제나 삶의 터전이 담겨 있다. 부표, 방파제, 통발, 작업 중인 어선 등 '사람'을 섬 미학의 일부로 배치한 것이다. 드물게 '사람'이 배제된 사진이 있지만, 그 경우에는 매우 가까이서, 혹은 위태로운 조건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강 소장의 위치가 확인된다. 관람자가 섬이나 바다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효과를 빚어낸다.
초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강 소장의 섬 사진에는 언제나 '사람의 길'이 표시되어 있는 셈이다. 무심하게 관망하는 객관성, 형식미학을 추구하는 탈문명의 초월적 시선을 강 소장의 사진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결국 강 소장은 '더 넓은 세상으로서 섬'을, '정신의 근육을 키워주는 섬'을,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만드는 섬'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강 소장은 왜 이토록 간절하게 '같이 섬에 가보자'고 꼬드기는 것일까. 그와 나눈 대화, 전시 서문의 글 등으로 미루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섬과 섬사람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차별과 소외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황폐화시킨다.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와도 같다. 극복을 위한 출발은 섬과 섬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이해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 사진을 보여주며 강 소장은 '같이 섬에 가보자'고 꼬드기는 것 같다.
둘째는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해서이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고, 우리네 문화는 가장 활력 넘치고 왕성했다. 분단과 전쟁, '해외'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었던 독재통치를 겪으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 시야가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 이처럼 '갇힌 현실'에 균열을 내고자 강 소장은 '같이 섬에 가보자'고 유혹하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