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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리고 잡아먹히고... 이 무서운 그림의 매력

히에로니무스 보스, 지옥을 그린 화가

등록 2019.12.24 17:27수정 2019.12.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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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고 우아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미지를 뒤엎는, 매우 독특한 화가가 15세기 네덜란드에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시키는 그의 기괴한 초현실주의적 그림들은 미술사에 있어서, 그의 이전과 이후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다른 작품을 창조했을까?


첫째, 고문당하고 칼에 찔리고 괴물 같은 동물들에게 잡아먹히는 기괴한 악몽의 판타지를 그렸다는 점에서 이상적이고 고전적인 피렌체 르네상스와 대척점에 있다.

둘째,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도 종교화를 제작하긴 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이단의 주제를 이용하여 관능적인 여인의 누드를 즐겨 그리며 종교적 금욕주의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반면,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엄격한 중세적 신앙의 메시지를 전한 종교화를 그렸다는 점이다.

중세적 원죄의식이 만들어낸 공포의 판타지

15세기 유럽 사회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문화 운동과 대항해 시대의 지리상의 발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과학과 이성이 미신과 신화를 몰아내기 시작했고, 인간의 정신적 영역은 중세의 종교를 넘어서서 확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북유럽 지역들은 오랜 중세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네덜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오랜 생활 방식과 가치관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매우 독창적인 스타일로 표현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죄,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대한 공포로 가득 한 어둡고 무시무시한 판타지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플랑드르 양식으로 작업하지 않고, 당시 이미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의 기법인 자동주의(Automatism)를 시도했던 혁명적인 화가였다.

나이트메어 테마 파크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참나무 패널에 3개의 그림이 서로 맞붙은 세 폭짜리 그림 '트립티크 Triptych'를 여러 점 그렸는데, 대표작은 <쾌락의 동산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다.

이 작품의 왼쪽 패널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수많은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동물을 그린 낙원을 그리고 있다. 중앙 패널은 다수의 벌거벗은 남녀와 거대한 과일 및 새를 그린 지상의 쾌락의 정원, 그리고 오른쪽 패널은 죄인들이 고문과 징벌을 받고 있는 지옥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은 왼쪽의 낙원에서 오른쪽의 지옥으로의 여정을 보여주는데, 지옥의 모습은 지상의 쾌락과 죄의 결과라고 말하며 교훈과 경고를 주려고 한 것 같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1490-1500, 참나무에 유채, 220 x 389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1490-1500, 참나무에 유채, 220 x 389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wikimedia

파라다이스인 에덴동산은 평화와 풍요로움으로 채워져 있다. 아담과 이브가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위에는 고딕 혹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분수가 보이는데, 이는 생명의 분수로서, 자연의 창조력과 낙원의 사랑스러움, 풍요로움 등의 상징이다. 유니콘이 물을 마시고 있고, 흰 코끼리, 부활과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공작새, 기독교인의 삶을 뜻하는 야자수, 평화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풍성한 과일들이 열린 나무 등이 천국의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중앙 패널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동산에서 발가벗은 남녀가 삶의 환락을 즐기고 있다. 당시 어떤 예술가도 히에로니무스 보스처럼 이렇게 거대한 크기의 과일과 나체의 인간들, 그리고 실물보다 큰 동물들을 그리지 않았다. 중세가 끝나갈 무렵이지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이 있던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러한 불경한 나체의 남녀와 이단적인 동식물을 그렸다는 것은 매우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것이었다.

중앙의 연못에서는 누드의 여인들이 목욕을 하고 있고, 다양한 동물들에 올라탄 남자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 중앙 패널의 핵심 주제는 색욕이다. 육욕에 탐닉하는 나체의 남녀들뿐 아니라, 섹슈얼리티의 상징인 새, 과일 등이 이를 말해준다.
 
   <쾌락의 정원> 중 지옥의 장면(오른쪽 패널)
<쾌락의 정원> 중 지옥의 장면(오른쪽 패널) wikipedia

오른쪽 패널의 주제는 중앙 패널의 환락이 가져온 결과, 즉 지옥의 장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의 온갖 그로테스크한 생물체들, 하이브리드 동물들, 그리고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만들어내는 이 악몽의 드라마를 보고, 보스가 그냥 단순히 이단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가 사람들에게 종교적, 영적인 교훈을 주려고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정설이다. 보스는 분명히 종교적 믿음이 강했던 북유럽 지역에서 산 미술가였고, 그 역시 사회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끔찍하고 괴상한 괴물들, 악마들, 그리고 독창적인 고문 장면의 비전들 때문에, 그가 혹시 환각제를 사용하고 이것들을 그리지 않았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러한 형상들은 그의 창의적인 발명일 것이다.

중세 사람들이 지옥의 모습과 신의 징벌이라는 개념에 익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농부나 노동자 계층, 혹은 중산층까지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척박한 삶을 살았다. 대체로 14세 무렵이면 결혼해 아이를 낳고, 24세 정도가 되면 죽었다. 기근이 들면 굶어 죽었고, 괴혈병, 천연두, 종기, 페스트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던 중세인들의 곁엔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 있었다.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발달한 첨단 의학의 혜택을 받으며 100세 인생을 기대하는 현대인이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에로니무스 보스라는 천재적 크리에이터는 중세인들이 가졌던 지옥의 관념을 전례가 없는 어마어마한 상상력으로 재현한 것이다. 르네상스의 천재는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만은 아니었다.

우리를 사로잡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매력

20세기 초현실주의 회화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와 이브 탕기(Yves Tanguy)는 히에로니무스의 이미지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그들의 작품에 차용했다. 그리고 1960년대 반전운동, 68혁명 등의 사회적 움직임을 배경으로, 기득권층의 보수적 가치에 반기를 든 록 스타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바보들의 배 The Ship of Fools>를 보고 같은 제목의 곡을 만들어 불렀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제일 인기 있는 그림 중 하나인 <쾌락의 정원> 앞에는 연일 사람들로 북적여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16년, 그의 탄생지인 네덜란드 덴 보스의 작은 미술관에는 서커스와 연극, 멀티미디어를 조합하여 제작한 <보스 드림즈 Bosch Dreams>를 보러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지금도 전 세계를 성황리에 순회공연 중이다. 500년 전의 이 화가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갖 첨단 CG 기술을 사용한 현대의 판타지 영화 저리 가라고 할 만한 기발하고 환상적인 비전들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들에 넘쳐흐른다. 볼거리도 많고 자극적인 것도 많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그림 속 비전들에 사로잡히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존재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각, 죽음에 대한 공포, 원죄 의식,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참고문헌>
*Brittany R. O'Do No 03wd, "Passing Time in "The Garden of Earthy Delights" by Hieronimus Bosch, INQUIRIES, 2014, Vol 6
*Alexxa Gotthardt, "Decoding Bosch's Wild, Whimsical <Garden of HieronEarthly Delights>", Artsy, Oct 18th, 2019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Wikipedia
#히에로니무스 보스 #초현실주의 #악몽 #판타지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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