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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 숫자로 이 위기를 설명하려 하지 말라

[코로나19, 인권을 말하는 이유①]

등록 2020.07.06 16:30수정 2020.07.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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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권대응 네트워크는 코로나19를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코로나19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담아 글을 기고합니다. [편집자말]
"21세기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아."

지난 2월, 대남병원의 집단감염 소식을 듣고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마음이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저 독한 감기 같은 유행병일 줄만 알았던 코로나19가 그냥 유행병으로는 그치지 않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그날은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에게 갔다. 택시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는 묵묵한 한강이 길게 뻗어있었다. 세상은 어제와 다르다. "21세기가 이제야 시작되는 것 같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로부터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매일 아침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코로나'를 검색하고 새로운 확진자의 숫자를 확인할 때도 있었다. 매일 아침 나라별 확진자 수를 찾아보며 그 순서를 훑어볼 때도 있었다. 

가방에 비상용 생리대를 넣고 다니는 것처럼 비상용 마스크를 넣고 다녔다. 기침하는 사람을 피해 다녔다. 어딘가에 들어가면 손을 씻을 수 있는 곳부터 찾았다. 겨우내 감기도 한 번 걸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비행기들이 사라졌다. 해고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거리에서 다시 쫓겨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멈춤', '자가격리' 같은 이상한 말이 생겼다. 점차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위기에 대한 어떤 마음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별적으로 아프다
 
 2일 오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2일 오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똑같이 아프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지만, 코로나19는 이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누군가는 더 아파야 했고, 안전한 공간 바깥에 남겨져야 했다. 


"아프면 쉬라"는 재난 문자가 매일 쇄도할 때, 확진자가 발생한 쿠팡의 물류센터에서는 당일 오후조를 정상 출근 시켰다. 이태원에서 감염이 발생했을 땐 혐오와 낙인으로 온갖 미디어가 요란했고, 어느 성소수자는 가슴 졸이며 선별진료소에 들어서야 했을 것이다.

치료제가 나온다, 백신이 나올 거다, 제약회사들의 주식이 치솟는 한편 어느 이주민은 등록과 미등록의 경계를 다시 새겨야 했을 것이다. 한국의 선진적인 'K-방역'을 앞다투어 칭찬할 때, 격리시설에서 집단감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차마 헤아릴 수 없다.


코로나19는 '안전'과 '방역'이 마치 삶의 최우선인 것처럼 세상을 바꿔놓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안전과 방역의 바깥에 남아있다. 혹은 안전과 방역이 쌓아 올린 장벽과 경계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방역일까. 무엇으로부터의 안전일까. 너무 쉽게 말해지고 너무 쉽게 바뀌었다. 

'코호트 격리'가 실시간검색어에 올랐다. 각종 사이트의 상단은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로 도배되었다. 로켓 배송된 쿠팡의 물건들을 손도 안 댄 채로 무료반품 시켰다. 집회가 금지됐다. 철거민이 쫓겨났다.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그래야만 한다고, 그냥 그렇게 말해졌다. 

그러나 물어야 할 것은 쉽게 묻지 못했다. 우리는 왜 누군가는 더 아파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왜 우리는 사람을 바이러스로 보고 있는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바로 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정교한 방역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세계는 애도의 틈도 없이 갈라지고 무너지며 연대를 유보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된 한 몸임을 느끼고 있다. 아픈 사람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모두 아프다. 

이제 더 아프다는 것은 오한과 발열, 인후통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임대" 딱지가 나부끼는 거리에서, 낙인의 바람이 휩쓸고 간 이태원에서, 집회 금지 조치로 텅 빈 거리와 광장에서, 타인의 고통이 상상되는 모든 곳에서, 과연 '나'는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기 전에, 안전한 집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아프면 쉬라고 하기 전에, 아프면 쉴 수 있는 일터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 시국에 왜 자꾸 나와서 시위를 하냐 하기 전에, 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누구의 안전인가
 
 코로나19 이후 실시된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집회금지조치에 대해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2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공권력감시대응팀, 코로나19 비정규직 긴급행동,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시민노동단체 주최로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실시된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집회금지조치에 대해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2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공권력감시대응팀, 코로나19 비정규직 긴급행동,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시민노동단체 주최로 열렸다.권우성

코로나19가 드러낸 차별과 배제, 혐오와 낙인은 오래전부터 뿌리 내리고 있던 것들의 발현일 뿐이다. "세상 망해가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는 갑자기 망한 것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노동자가, 이주민이,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와 잠시멈춤은, 우리의 관계를 차단하고 우리의 삶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다. 멈춰야 할 것은 나의 일상이 아니라 지금의 혐오, 지금의 해고, 지금의 불평등이다. 

'거리두기'가 우리의 관계를 차단할 수는 없다. 거리를 둬야 할 것은 지금의 사회적 재난을 만들어낸, 뿌리 깊은 차별과 배제다. 점점 더 많은 존재가 멈추어지고, 점점 더 많은 관계가 차단될수록, 코로나19의 위기를 만들어낸 불평등의 뿌리는 깊어질 것이다.

코로나19의 '극복'은 '신규 확진자 0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숫자로 이 위기를 설명하려 하지 말라. 확진자가 0명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확진자가 50명이라고 해서 광장을 비워야 할, 거리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종식만으로는 이 재난을 극복했다고 할 수 없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한 발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어떤 존재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안전'은 누구의 안전인가. 국가의 '방역'이 유보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해야 한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에 가려져 있던 사람과 관계, 장면과 사건을 말해야 한다. 차별과 배제로 인한 위기의 불평등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재난임을 외쳐야 한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세상을 넘어 차별과 배제와 혐오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떠올리고, 기억하며, 우리는 더욱더 연결되고 만나야 한다. 결국 이 위기는 '사람'의 위기다. 위기를 막기 위해 사람의 존엄과 평등을 저버리면 그게 과연 무슨 소용이라는 걸까.

그러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우리의 연대가 그 세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인권은 멀지 않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함으로써 증명되고 완성된다. 텅 빈 광장을 보며 마음 아파하다가도, 다시 거리에서 만나며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는 우리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의 연대에는 그 어떤 거리두기도, 잠시멈춤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연대는 그 어떤 존재도 유보하지 않는다. 그것이 감염병으로 다시금 시작되는 21세기에 우리가 인권을 외치는, 외쳐야 하는,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음 기사] [코로나19, 인권을 말하는 이유②]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재감염'보다 'OOOO'을 더 무서워했다 http://omn.kr/1oav1
덧붙이는 글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코로나19 위기에서 인권을 돌아보고 인권으로 대응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의 인권 실천, 그 길을 비추며 함께 하겠습니다. '코로나19와 인권 -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자료집은 다음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73350
#코로나19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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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거북목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아 참는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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