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펌을 했던 머리를 다 잘라내고, 드디어 나의 곱슬머리만 남았다.
이혜림
날씨, 습도에 따라 머리카락의 컬과 결이 달라져서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거울 속 지금의 제 모습이 훨씬 나다워서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이마 쪽 헤어라인은 여전히 지렁이처럼 꼬불거리는데 이제 누군가 시선이 오래 머물면 콤플렉스를 들켰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응, 나 곱슬머리야. 요즘 매직 파마 안 하고 길러보고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존감도 생겼어요.
완벽하게 고데기와 매직 파마에서 벗어난 삶이 무척 홀가분합니다. 언젠가 또다시 헤어숍에 가서 매직 파마를 할지도 몰라요. 아마 차분한 칼 단발 헤어스타일을 해보고 싶어진다면 말이에요. 그때까지는 20년 만에 겨우 만난 내 천연 곱슬머리를 있는 힘껏 예뻐해 주려고요!
곱슬머리라서 좋다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태어날 때부터 생머리였다면, 전 아마 제가 생머리여서 좋다고 할 거예요. 저는, 제가 가진 제 머리카락 그 자체가 좋아요. 그게 어떤 형태라도요. 이런 마음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이요.
작년 한 해 동안에는 이 곱슬머리를 풀어헤치고 세계여행을 다녀왔어요. 한국에서는 제발 좀 미용실 좀 가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던 제 곱슬머리가 아무런 관심을 받지 않는 것, 그게 저를 자유롭게 했어요.
그래서 남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나 자신과 내 삶을 더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어졌어요. 얼굴 가득한 주근깨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 바르는 것을 멈췄고, 빈약한 가슴을 숨기기 위해 뽕브라를 차는 것도 멈췄고.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었던 곱슬머리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고. 29살부터 벌써 나오기 시작했던 새치들도 더 이상 뽑지 않아요.
나 자신을 사랑하기의 시작은 미니멀 라이프
'까탈스럽고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겠다, 그러니 숨겨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저의 본 성격 또한 더 이상 가리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예민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방어벽이 약해서 민감한 성향일 뿐이에요.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에 누구보다 더 잘 공감할 줄 압니다.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더 이상 제 민감한 성격은 제게 가려야 할 단점이 아닙니다. 좋게 발달시켜 나와 평생 함께 갈 장점입니다.
나를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내 존재를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기뻐하기 시작하면서 제 여행 또한 술술 풀리고 여기저기서 천사가 나타나서 알아서 도와주고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 모두가 미니멀 라이프 덕분이에요.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돈돈' 거렸을 거예요. 이 지긋지긋한 원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요. 세상에서 나보다 잘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만 흘깃거리면서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내 인생과 비교하며 괴로워했겠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세계여행을 떠나올 용기도 없었을 거고요.
결국 모든 시작은 미니멀 라이프였어요.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내게 쓸모없는 물건 하나 버리기였고요. 그러다 보니 저는 온전한 제 곱슬머리를 아주 많이 예뻐해줄 정도로,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네요. 과거의 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미니멀 라이프는 기적의 시작이에요.
요즘 무척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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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은 이제 그만... 그냥 곱슬머리로 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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