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사는 어쩌다 '이적단체 수괴'가 되었나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오픈스터디'] 박미자 전교조 해직교사

등록 2020.11.13 16:14수정 2020.11.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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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억눌러온 법으로, 폐지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 위원회는 한국 사회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바로 알기 위한 5회 차의 오픈스터디를 진행한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주인되기>는 국가보안법의 기원부터 폐지의 법률적 쟁점까지, 국가보안법의 A to Z를 파헤친다. [편집자말]
2000년,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장면이 펼쳐졌다. 박미자 교사는 남북교류의 한복판에서 교육자로서 남과 북을 수없이 오간 인물이다. 북의 교사들과 함께 백두산에 가고, 통일 대회도 같이 했다. 그렇게 통일이 정말로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박 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교사직에서 해직당했다. 국가보안법 오픈스터디의 마지막 연사로 박미자 교사를 만났다.
 
 발언하고 있는 박미자 전교조 해직교사
발언하고 있는 박미자 전교조 해직교사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2004년에 국가보안법 폐지가 정말로 큰 이슈였어요. 문턱까지 갔지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사람들이 금강산에서 만나고 평양과 서울을 오갔다. 청년과 농민, 노동자들이 남북통일 대회를 열었고, 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옆 반 선생님이 평양에 다녀왔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던 때였다. 통일이 문전에 있는 것 같았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인권위원회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폐지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에만 바빴다. 여론에 떠밀려 논의가 시작됐지만, 결론은 나지 못했다. 결국 폐지의 문턱까지 다 달았던 국가보안법은 개정도, 폐지도 되지 못한 채 남고 말았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524 조치가 내려졌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민간인을 사찰했고 방북 경험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압박했다.

박미자 교사는 2010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전교조 내에 통일 실천단과 교사 통일선봉대를 꾸렸다. 통일 교육과 남북교육자 교류에 앞장서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 교사는 이적단체결성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녀에 대한 뉴스가 매일 같이 언론을 장식했고 전교조에는 '빨간 색깔'이 칠해졌다.

"기소된 혐의가 5가지였어요. 이적단체 결성, 회합 통신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이적표현물 제작 및 배포, 이적표현물 소지. 그냥 간첩이라는 거죠. 변호사가 우스갯소리로 이 정도면 이적단체 대표도 아니고 수괴라더라고요."

5개의 혐의 중 유죄가 인정된 건 딱 하나, 국가보안법 7조 5항의 이적표현물 소지죄다. 참여정부 시절 북에 방문해서 선물용으로 구입한 책 〈봉이 김선달〉과 〈민족의 세시풍속 이야기〉가 문제가 됐다. 당시에는 무리 없이 통과된 책이 정권이 바뀌니 국가보안법 위반 서적이 되었다. 함께 기소된 다른 교사는 남북 교류가 활발할 때 북의 교사가 좋아한다는 노래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았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파면당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적용되는 법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박 교사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운동 시민연대'를 결성했다.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에 앞서 조항 하나부터 이야기하며 대중과 호흡하고 판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국가보안법 7조 폐지운동'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운동'입니다. 우리는 모이면 여기서 시작이다, 7조부터 끝까지 간다고 이야기해요."


촛불정권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 폐지에는 소극적이다. 427 선언이 있었지만 615 공동선언 때와는 다르게 남북 교류가 지지부진하다. 박 교사는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하는 정권의 선거 공학적인 모습을 지적하면서도, '정부가 알아서 해주는 일은 없다'며 정권에 기대지 않는 민중의 힘을 강조했다.

박 교사는 가장 궁극적인 통일 교육으로 '주인 의식'을 이야기한다.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 이 땅의 주인이 되어야 스스로 옳은 일과 그른 일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주인인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저마다의 의견이 존중받는다. 낙인이 두려워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우리 사회 속 학습된 내부검열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평화통일이 가까워지면 무엇이 가장 기대되냐는 질문에 박 교사는 남북의 학생들이 함께하는 체육대회를 보고 싶다고 답했다. 소소하지만, 가장 상징적인 평화의 모습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지고, 북쪽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는 불법이 아닌 때일 테니 말이다.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의 다섯 번의 국가보안법 오픈스터디가 지난 4일 막을 내렸다. 내로라하는 활동가들과 학생들이 국가보안법의 탄생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그렸다. 곽호준 대학생위원장은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살아온 연사들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며 배움의 열기가 가득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곽 위원장의 끝인사로 5회차의 기사를 마무리한다.

"하루가 다르게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모쪼록 건강 조심하세요.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사업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대학생위원회가 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전교조 #청년진보당 #진보당 #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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