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방명록에 남겼던 글씨
이환희
급히 써야 할 원고가 있어 초당에 주저앉았다. 선각이 후몽(後蒙)의 글씨를 내려보시겠거니 했다. 해당 원고는 미국 모더나 사가 이미 계약됐던 백신 제공분을 계약 내용대로 전부 제공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던 날의 소식이었다. 마진(痲疹)이라고 불리던 홍역을 연구해 어떻게 하면 돌림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의서를 짓기도 했던 그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버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노트북 자판을 누르는 족족 풀모기에 쏘이는 느낌이었다. 반바지를 입고 왔던 나의 몽매함을 한탄했다. 강진읍내로 돌아가면 기피제와 물파스를 꼭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기사를 매조지하고 전화기 테더링을 이용해 데스크에 넘겼다. 그 옛날이면 재와 강을 넘고, 말을 갈아타며 거듭 졸린 눈을 비비면서 몇날 며칠을 지쳐 달렸어야만 가능한 일을 나는 고작 몇초 사이에 치워버렸다. 편리와 쾌적에 익숙한 현대인은 내내 쏘는 풀모기의 공격에 그런 고마움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저 당연한 것이겠거니, 이런 생각도 안 했다.
다산 형제님께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나왔다. 산길을 힘들게 오르는 방문객들이 보였다. 가족 단위 분들로 아이에게 이곳을 보여줌으로써 무언가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인가 싶었다. 그러나 사실, 아잇적엔 몸 편하고 시원하고 쾌적하며 눈앞을 부실 정도의 화려한 무엇이 번쩍번쩍 거리는 곳을 선호하지, 이런 데는 좀 성가셔하지 않나. 내가 그들을 과소평가하나. 암튼 나는 그랬다.
그래도 꽤 걸었는지 발을 쿡쿡 누르는 바윗길이 묵지근한 통증을 전했다. 백련사에서 주워온 지팡이로 땅을 세게 짚는다. 어디 누워 막걸리나 한 잔 들이켜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돌아다니는 일이 쉽잖다. 일상에 매여 이럴 염도 못 내는 분들이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한량은 말을 줄인다.
백련사 정거장에 내려주신 기사님은 늦어도 오후 5시 30분에는 다산초당 버스 정거장에 나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것이 막차일 것이라고 했다. 서둘러 걸어 그 전에 도착했다. 호젓한 정취. 정거장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이제훈과 수지가 함께 앉았던 간이 정거장을 닮았다. 그 장면을 보는 동안 상영관 내부에는 일말의 공기도 돌 틈이 없었다. 배우 둘 사이에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 곁엔 누구도 없었다.
하늘이 좋았고 해가 식어가는 무렵이었다. 앉는 자세마저도 불편해 드러누워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고, 자가용 몇이 내 곁을 지날 때 안에 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듯하여도 그걸 내가 개의할 건 아니었다. 한국처럼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회에서 이번 부유를 통해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초연함 하나만 얻어도 여정에 쏟은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묵직한 경유 배기음 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온다. 노랗고 큰 덩치가 마냥 정겹게 보인다. 버스에 오를 때 혜장과 초의선사가 우편에서, 다산 선생이 왼편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듯 느껴졌다. 길은 마냥 고라 흐뭇하고, 길 저편으로 일망무제 들판과 다붓한 능선이 눈 안에 들어올 때 편안했다. 계절은 여름 지나,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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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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