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암고 바위, 세상살이에 대한 고인의 조언
조진태
# 효암고
학생들은 일상처럼 학교에 오고, 가끔 부모님들이 아이를 태우고 오십니다. 출근길에 짬을 내서 오시겠지요.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어울려 교문에서 맞절을 합니다. 그 모습을 한 바위가 묵묵히 지켜 봅니다. 학교를 믿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맡기는 효암의 암은 말 그대로 바위입니다. 학생들은 매일 등굣길에 할배가 아낀 바위를 알 듯 모를 듯 지나칩니다. 핸드폰을 보면서도 돌계단을 용케 잘 오르내립니다.
할배가 교명의 바로 뒤에 세운 커다란 바위는, 교명 '효암'의 의미를 풀어준 느낌을 받습니다. 효암은 '새벽 바위'입니다. 새벽별 효성이 긴 밤을 지새고, 여명을 알린다면, 효암은 지상에서 그 일을 해낸다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명 뒤편에는 새벽 바위의 역할이 쓰여 있습니다. 바로 '쓴 맛이 사는 맛'이라는 할배의 소신입니다. 왜 하필이면 쓴 맛이 사는 맛인가?, 단맛이 있는데, 막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왜 쓴맛의 가치를 일깨우려 했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순적이 어법입니다. 말은 기억을 통해 후세에게 유전됩니다. 나의 단 맛이 상대의 쓴 맛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자각할 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쓴 맛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타인을 배려하기 어렵다고 할배가 말씀하셨지요.
밤을 지샌 자가 비로소 새벽을 알릴 자격이 있겠지요. '배움과 존중이 있는 건강한 공동체'라는 효암고의 교육 목표와도 통하는 대목입니다. 이 때의 존중은 타인, 그리고 정확히는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이웃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한 구퉁이는 다소 무너져 있습니다. 애초 상처 난 바위를 재활용했다고 합니다. 바위도 할배처럼 쓴 맛을 경험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