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인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장애인 관련법 등의 제개정 촉구 투쟁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오늘의 학습 목표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을 알아봅시다'였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미 다 배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뭘 했는데 벌써 배웠다는 건지 의아한 표정이다. 교과서를 미리 훑은 눈치 빠른 정현(가명)이가 적막을 깬다.
"아~ 다수결의 원칙! 이거 뭐 맨날 하는 거잖아!"
반장 뽑을 때도 하고 전교회장 뽑을 때도 하는 거라면서 내가 뭘 설명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내용에 두 줄만 덧붙이겠다며 칠판에 적는다.
1. 다수의 의견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2. 인권 문제는 다수결의 예외다.
100명이 편하고 1명이 불편한 상황 속에서 다수의 편의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더니,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이다. 그냥 그 한 사람만 참으면 안돼요? 아니 1명만 손해인 거면 이득 아닌가? 100명이랑 1명인데? 우수수 물음표가 쏟아진다.
나는 예시로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뉴스에 나오는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도 그렇다고. "누구나 원하는 곳을 못 간다면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물었더니 지난주 코로나에 걸려 내내 학교를 못 나온 민재(가명)가 말했다.
"난 일주일 집에 있는 것도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누구나 지루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원하는 곳을 못 가면 답답하다. 나는 민재에게 격리가 끝난 날 뭘 했는지 묻는다. 가족들이랑 다 같이 장 보러 갔다는 민재. 가족이 모두 확진되고 격리가 끝나던 날 민재는 없는 일정을 만들어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빵집에 들렀다. 집에만 있는 것, 나오지 못하는 것, 횡단보도 건너로 갓 나온 빵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봄나들이가 아쉬운 것. 민재가 7일간 아쉬웠던 것들을 7년간, 17년간, 그 이상을 아쉬워 한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4월 국회 국토교통위 진성준 의원이 서울시-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저상 버스 설치 비율은 2021년 3월 기준으로 59.8%였다. 지하철의 경우, 엘리베이터 등 승강 편의시설을 한 곳은 지난 3월 기준으로 93.6%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장애인 콜택시의 평균 대기 시간은 32분이다.
휠체어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버스 2대 중 1대를 눈앞에서 보내야 하고, 내릴 수 없는 지하철 역이 존재하며, 영화 시작 시간을 맞추려면 1시간 먼저 나가야 한다. 대기시간을 생각하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24시간이 아니라 20시간, 16시간 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할 수 있다. 누구의 시간은 금이고 누구의 시간은 돌멩이인가.
더 좋은 세상은 서로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