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규 앨범 < IM HERO > 발매한 가수 임영웅
물고기뮤직
<미스터 트롯>을 엄마에게 소개한 사람은 나였다. 정체 파악이 안 된 바이러스가 온갖 괴담을 퍼트리며 무섭게 퍼지던 때였다. 엄마는 집안 걱정으로도 버거운 여든셋의 나이에, 인류 걱정까지 끌어안았다. 심각한 소식은 연일 쏟아져나왔고, 엄마의 미간 주름도 깊어졌다. 나는 TV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뉴스는 적당히 보시고, 재미난 노래 좀 들어보세요."
엄마와 <미스터 트롯>의 첫 만남이었다. 그보다 일주일 앞서 우연히 TV조선의 경연 프로그램을 봤는데, 트로트에 별 관심이 없던 나도 유쾌하게 시청했더랬다. 부모님 댁의 옆집에 사는 큰언니가 저녁 인사차 들렀다가 함께 <미스터 트롯>을 보았다. 참가자의 다채로운 삶과 출중한 노래 실력과 뜻밖의 개인기에 다 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임영웅을 '추앙' 하게 된 엄마
태권도 국제대회에서 1위를 했다는 참가자는 마이크 들고 노래를 부르며 공중회전을 했다. 세상에나! 입이 딱 벌어졌다. 착지 후 음정의 흔들림 없이 노래를 이어가는 모습에 심사위원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남성 참가자는 혼자서 남녀 듀엣곡을 완벽하게 불렀다. 양복과 드레스로 분할 제작한 의상을 입고,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바꿔가며 노래했다. 어머머, 저런 게 가능해? 목동 수학학원에서 일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는 출연자도 있었고,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내어 참가한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엔 홍대 입구에서 군고구마를 팔았다는 포천의 청년 임영웅도 있었다.
임영웅은 목소리가 부드럽고 섬세하면서 깊었다. 곡의 해석이 뛰어나 원곡보다 감정이 풍부하게 다가왔다. 다른 참가자들이 현란한 특기를 뽐낼 때, 그는 무대에 못 박힌 듯이 한 발짝도 떼지 않고 노래만 불렀다. 그런데도 그의 무대는 꽉 찼다. 엄마와 큰언니는 임영웅의 감성에 곧장 빠져들었다.
'우리 영웅이'라고 친근히 부르며, 본방에 재방에 삼방에 몇 번째 방송인지 셀 수 없을 때까지 봤다. 흐뭇해서 웃음을 흘리고, 짠해서 눈물을 찍어가며 임영웅을 '추앙'했다. 경연의 최종 순위를 가리는 날, 우리는 난생처음 '문자 투표'라는 걸 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임영웅이 1위 우승에 상금 1억까지 쥐게 되자, 엄마는 자식의 대학 합격보다 더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근처에 사는 동생네 큰아이가 신기해했다. 할머니가 연예인을 좋아하신다고요? 중2인 조카는 어느 날 용돈을 챙겨 레코드 가게로 갔다. 임영웅 노래가 칩에 담긴 빨간색 소형 라디오를 할머니께 선물했다. 효손이로다, 효손. 엄마는 손자 자랑을 곁들여가며, 나물을 다듬거나 설거지할 때 임영웅 라디오를 가까이했다. 임영웅 쿠션과 머그컵, 포스터, 달력이 점차 집에 자리했다. 그렇게 2년 동안 영웅이 사랑을 키워갔다.
"아빠는 제가 볼테니 엄마는 영웅이를"
지난해 코로나19의 지속으로 미스터 트롯 콘서트가 취소된 후,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임영웅 단독 콘서트가 열리게 되었다. 고양을 시작으로 창원, 광주, 대전, 인천, 대구, 서울에서 공연을 이어간다(서울 공연은 8월에 열린다).
큰언니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다. 장거리 이동을 좋아하지 않는 언니가 이때만큼은 강하게 밀고 나갔다. 엄마는 주저했다. 허리 협착증으로 외부 활동을 꺼리는 아빠한테 미안해서다. 나는 몇 차례에 걸쳐 엄마를 설득했다.
"지금 아니면 평생에 언제 콘서트를 가시겠어요. 제가 아빠를 맡을 테니, 엄마는 영웅이 보러 가세요."
티켓 예매는 치열한 전쟁이었다. 0.0001초 차이로 성공이거나 실패였다. 나와 큰언니, 큰조카는 각자 노트북과 폰을 가동하여, 고양시 티켓 오픈에 맞춰 빛의 속도로 클릭했다. 믿기지 않지만, 셋 다 예매에 실패했다. 아, 임영웅의 인기는 빛보다 빠르구나. 우리는 노트북의 후진 사양을 탓하고, 뭉뚝한 손놀림을 구박하고, 콘서트를 예매해보지 않은 그간의 삶을 한탄했다.
6월 10일~12일 열리는 광주 콘서트는 벼르고 별렀다. 중앙이든 구석이든 가리지 말고, 두 자리 보이는 대로 예매한다! 20분 정도 접속 대기를 거쳐 큰언니가 S석 예매에 마침내 성공했다. 우리는 전화로 기쁨을 나누고는, 광주시 호텔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공연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조식이 맛있다는 호텔이 있길래 바로 예약했다.
콘서트 준비는 계속되었다. 큰언니가 공식 응원봉을 미리 사두길 잘했다. 하늘색 공식 티셔츠는 품절이라 며칠을 기다려 가까스로 구입했다. 하늘색 마스크를 주문하고 셀카봉 사용법까지 익혔다. 별다른 취미 생활이 없는 언니에겐 준비 과정 자체도 큰 즐거움이었다. 콘서트 날짜를 기다리며 설레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난 지 여든다섯 해 만에 처음 가보는 콘서트였다.
85살에 처음 가는 콘서트... "90대도 왔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