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열린 학술회의 '대한민국이 외면한 독립운동가-서훈의 당위와 방법'의 발제자와 토론자, 가운데가 기조강연을 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박용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 위원 중에서는 의병운동의 항일과 동학농민군의 항일을 구분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전봉준, 최시형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지 못한 이유인지 확실히는 모른다. 그들의 주장은 의병운동이 국권 수호를 분명히 하면서 항일운동을 한 것이지만, 동학농민군의 경우는 1차 때에 봉건왕조에 대해 저항했고 2차 봉기 때는 항일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국권 수호라는 점에서 항일의병과 차이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고 한다.
이는 의병운동의 경우는 부패한 왕조이지만 그 수호를 분명히 하면서 항일운동을 했기 때문에 항일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의 경우 부패한 봉건왕조를 혁파하려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항일 국권수호는 의병운동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는 2004년 4월 15일 '동학농민혁명참여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동학농민명예회복법)을 통과시켜 동학농민군의 활동을 '동학농민혁명'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동학농민들의 반봉건 운동은 부패한 왕조를 개혁하려 한 혁명이요, 조선의 궁궐을 강점하고 그들 뜻대로 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침략적인 일본군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전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군의 '반봉건' '항일전쟁'을 마치 봉건 국가를 타멸하려고 한 일종의 반국가적인 요소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고 그 항일운동 주동자를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하려 한다면, 그것은 법률로써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명명한 대한민국의 의지와도 상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동학군의 항일전쟁에 앞서 일어난 항일의병이 비록 봉건국가이지만 그 국가를 수호하려 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고 결정했다면, 그 봉건국가를 개혁하고 또 일제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기치를 든 동학농민혁명군의 지도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1894년 일본의 경복궁 유린에 대항하여 봉기한 제2차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을 '항일운동'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2차 동학농민혁명이 한국독립운동의 시작이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도 이에 맞추어 개정돼야 한다.
1894년 2차 동학농민혁명은 그 해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유린, 국권을 농단하자 이를 좌시하지 못하고 거사, '반일(反日)' '반제(反帝)'의 성격을 갖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다. 2차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인 전봉준, 최시형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