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이 약사인 정은숙 작가. 본캐는 약사이고, 부캐가 화가이지만, 때로는 바뀌기도 한다
안소민
학창 시절, 정은숙 작가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약대를 지망했고 지금은 약사로 일한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정은숙 작가에게는 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 열정으로 마음 한구석이 늘 덜컹거렸다. 40세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하다 보니 '평생 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연 염색, 홈 패션, 퀼트도 배웠지만 결국 그림에 안착했다.
"늘 나를 발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물론 약사 일도 재미있고 손님 대하는 일도 의미 있지만 자아실현의 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이상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본업이 아니라서 더욱 자유롭다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남들은 단순히 즐거워서 하는 거냐고 물을 때마다 정은숙 작가는 '의무'로 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데 '의무'가 따라야 한다? 좀 의아하다.
하지만 단순히 좋다는 경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서 투자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 만난 어느 가야금 명인이 그랬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잘 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단, 그때의 열심히는 어떤 결과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다.
정은숙 작가도 온전히 하루를 그림에 올인한다. 일주일 중 비번인 하루를 온전히 비워둔다. 그날은 오로지 '작가 정은숙'을 위한 시간이다. 물론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는 건 아니다. 산책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자신 안에서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 기다림 역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첫 전시회부터 지금까지 십여 차례 전시회를 하는 동안, 긴장하거나 두려운 적은 없었다. 오히려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 현재의 있는 그대로를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흔적 없이 살다 가고 싶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제가 살아낸 순간들을 남기고 싶습니다. 아름다웠고 슬펐고 기뻤고 쓸쓸했고 다정했고 고통스럽고 행복했던 삶의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 작가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