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친구
김수희
쟤와는 2020년 봄,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배우로 처음 만났다.
검정 배기 팬츠에 베레모를 쓴 쟤는, 서늘한 바람이 불던 날에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한눈에 나는 쟤가 자궁이나 난소, 아니면 유방에 질병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무렵 나는 자궁과 난소 수술 후 2년 정도 지속했던 호르몬 주사와 약을 중단한 상태였고, 얼마 전까지 호르몬 약 때문에 수시로 열이 오르던 내 모습과 그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얼마 후, 쟤가 유방암 4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 그는 이미 폐와 뼈에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한쪽 유방과 두 개의 난소를 모두 제거했고,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항암 치료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삼십대 초반, 여성 4기 암환자' 쟤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 애쓰기보다, 어떻게 잘 아플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길 원했다.
예술 기획 일을 하던 쟤는 항암을 시작하면서 온라인 삭발식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삭발식 영상 속에서 그는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광대가 위로 올라간 채 연신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삭발 후 스님 같다는 이야기를 듣자, 스튜디오에 가서 스님 콘셉트로 친구들과 코믹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함께 했던 연극에서 쟤는 '아픈 몸의 노동권'에 대해서 역설했다.
작년 봄, 쟤, 함께 연극했던 친구, 나. 이렇게 셋이 오랜만에 만났다. 쟤는 부쩍 야위어 있었다. 가방을 맨 어깨는 앙상했고, 골목길을 걸으며 숨이 차서 자주 쉬어갔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지만, 서른 여섯살 쟤의 몸은 분명 빠른 속도로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통증과 빈혈때문에 힘들다면서도, <아픈 몸과 함께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생기가 넘쳤다. 우리 셋은 합정의 작은 카페에서 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그러던 중에 여행 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고, 즉석에서 날짜를 잡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작년 7월, 삼척에서의 3박 4일이 쟤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너와의 헤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