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8월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배송작업을 하는 한 택배 업체 관계자의 모습.
연합뉴스
"택배기사들이 노조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쿠팡, CJ대한통운 등은 하도급 형태로 대리점주에게 택배를 위탁하고 있다. 월급이 아니라 물건을 나른 만큼 돈을 받는다. 택배 한 건에 800~1200원이 돌아온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움직이는 상황에서 노조 활동을 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는 게 현장 기사들의 설명이다. 윤씨는 "지난달 20일 근무하고 1100만원을 벌었다"며 "현재 근무 시스템에 만족하는데 굳이 노조가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쿠팡 택배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5월 24일 <"20일 일하고 1100만원 벌었는데"… 쿠팡 기사 '민노총 공포'>란 기사를 통해 쿠팡로지스틱스(CLS)가 위탁한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사이에서 '노조 포비아'가 생기고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꼽는 첫 번째 근거는 '현재 근무 조건에 만족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에 담긴 것들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해보기에 앞서 최근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면, 이렇다. 한 편에서는 '한 달에 20일 일하는 억대 연봉의 꿈의 직장'이라며 '팡'비어천가를 부르고, 다른 한 편에서는 쉬운 해고가 난무하는 죽음의 일터를 바꾸자며 '사즉생'의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 입장 사이 간극이 너무 커 현기증이 난다. 진실은 무엇일까.
쿠팡 택배 기사를 바라보는 두 시선
일단, 쿠팡 택배 기사들이 주5일 근무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계약서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쿠팡에서 택배 일을 하면서 주 5일을 근무하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기사가 쉬는 날에는 직영 기사(내지는 대리점 백업기사)들이 투입되는 데다, 집배점장(대리점 소장)은 본사인 쿠팡과 갑을관계에 놓여있으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주6일, 주7일 근무에 대한 무언의 압박감은 고스란히 택배기사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공휴일에도 일하는 쿠팡 택배 기사들의 모습에는 그런 남모를 속사정이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주5일 근무를 한다 하더라도, 영광의(?) 억대 연봉을 달성하려면, 산술적*으로 부부가 함께 일을 하거나, 혼자서 중노동을 각오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쿠팡 택배기사들이 받는 배달 수수료는 1건당 주간은 750~900원, 야간은 1000~1200원 정도로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가정해 봤을 때, 쿠팡 택배 기사가 한달(주 5일, 20일 근무 기준)에 1100만 원의 세전 수입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건당 11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쳐도 하루 약 500개를 배송해야 한다.
CJ 대한통운 기사들의 통상적인 일일 배송 개수는 250개~300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쿠팡의 경우, 한 집에서 여러 개를 주문하는 경우가 타 택배에 비해 많지만, 이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게 보편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위 기사에 등장한 '주장'들에 대해 따져보자. 우선, 1만 5000여 명의 쿠팡 택배 기사들 중에서 현재 근무 조건에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적어도 내 주변의 쿠팡 택배 기사들은 'O팡'(O같은 쿠팡의 준말), '탈팡'(빨리 그만두고 나가고 싶다, 는 의미)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다닌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극사실주의적 표현이 있을까? 필자도 모든 쿠팡 기사들을 만나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모두 만족스러워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란 이야기다.
다음으로, 불법 행위 논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노동조합이 현행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는 '포비아'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며 마치 모두가 노조 활동이 부적절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듯이 서술했다. 정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2차 가해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행태가 남긴 상흔을 최근 건설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목격했다.
'현재 근무 환경이 만족스럽다'는 말의 다른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