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교수는 지난 4월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세미나에서 윤 정부의 통치를 ‘검찰 통치’(prosecracy)로 규정했다. 사진은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2021.3.3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법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법치는 국가의 자의적 통치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의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전혀 아니다. 그의 법치는 정치와 사회를 법으로 통제하는 의미의 준법주의와 가깝다. 이 프레임에서는 오로지 합법 아니면 불법이라는 이분법만 작동하고 정치적 해법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야당, 노동, 시민운동 등에 대한 권력의 자의적 법 집행을 용이하게 한다. 요컨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자유시장을 방해하는 요소들(곧 카르텔)을 법 집행의 명목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윤 정부 정책의 기본 논리다.
윤 정부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법치에 따른, 카르텔 타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안병진 교수는 지난 4월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세미나에서 윤 정부의 통치를 '검찰 통치'(prosecracy)로 규정했다. 윤 정부의 담론(자유, 법치), 통치 방식(검찰 수사 중심의 국정 운영), 핵심 행위자(검사+관료 동맹) 등에서 검찰 통치가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지난 7월 <황해문화> 3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 김정희원 교수는 윤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처벌국가'라고 명명했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처벌국가는 "'자유'와 '시장'의 이름으로 개인을 소외시키고 원자화하며, 동시에 다양한 처벌 기제와 공권력 수행을 통해 개인을 사회로부터 축출하고 범죄화한다". 그것은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혐오 발언 같은 폭력적 문화 및 사회적 관행을 고착시키며, 소수자와 약자 집단이 차별과 불평등에 더욱 취약하도록 만든다".
김동춘 교수 역시 같은 관점에서 윤 정부의 사교육 때리기, 노조 때리기, 마약사범 단속 등을 '형벌국가'(penal state) 현상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형벌국가의 대표적 사례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빈곤과의 전쟁'인데, 이는 중하층의 위기와 불안을 정권에 돌리지 못하도록 소외층을 때려잡는 속임수 정책이다. 형벌국가의 주된 특징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표적 집단의 부수적 범죄만 부각한다는 것이다.
신진욱 교수는 윤 정부의 "복지서비스 시장화, 실업급여 축소 주장 등 '신자유주의적' 측면이 있고, 그렇게 규정하는 데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이념도 정책도 없이, 오직 권력을 위해 대중의 불안과 증오를 요리하는 기술이 발달하는 것은 오늘날 우익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종국에는 권위주의 체제로 간다"고 보았다. 그는 윤 정부에게서 신자유주의나 보수주의와 같은 일관된 노선을 찾기 어렵고, 단지 윤 정부는 전형적인 우익 포퓰리즘의 행태를 보이면서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다고 본 것이다.
나라와 국민 피폐하게 해
이와 같은 논의와 관련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을 언급하면서 맺고자 한다. 첫째, 윤 정부의 정책과 그 바탕 논리를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부의 정책도 마구잡이는 없다. 나쁜 정부의 정책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나쁜 정부의 정책을 깊게 파악할수록 그 대안을 정확히 찾고 그 정부의 시기를 슬기롭게 건너갈 수 있기에 하는 얘기다.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그동안 실언, 극언, 남 탓하거나 무책임한 발언, 심지어 기술적 침묵 등을 수없이 해왔다. 그 말들은 윤 정부의 태생적인 아마추어리즘의 발현이기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냉정히 그 이면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윤 정부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그래서 필요하다.
둘째, 윤 정부의 정책과 논리는 우파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측면과 처벌국가(검찰 통치)의 측면을 거칠게 조합(combination)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측면을 좀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논자들 간에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윤 정부의 경제 정책과 재정 정책 그리고 복지 축소 정책 등은 우파 자유주의의 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윤 정부의 '법치'와 '반카르텔'은 처벌국가의 전형적인 통치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양 측면이 분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처벌국가와 같은 형태의 개입주의 정부를 추구했다. 레이건 정부의 '빈곤과의 전쟁'이나 영국 대처 정부의 '노조와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피에르 다르도 & 크리스티앙 라발은 <새로운 세계합리성>(그린비, 2022)에서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가 전혀 아니며, 오히려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종용하는 통치 합리성이라고 말한다. 또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초래한 위기에도 '살아남아' 자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발하는 위기를 '이용해' 자신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퇴조 이후의 우파 정부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 유전자를 물려받으면서 포퓰리즘적 처벌국가 행태를 강화하는지 그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준다. 윤 정부의 '자유'와 '법치' 그리고 '반카르텔'은 그렇게 조합되는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윤 정부의 우파 자유주의(신자유주의)는 시대에 역행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풍미했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꺾였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는 거의 쇠락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빈부 격차와 불평등 심화, 고용∙노동∙복지의 불안정성, 민주주의 후퇴 등을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의 연원은 보통 다윈 진화론의 변종인 사회진화론(19세기 말~20세기 초반)에 있다고 얘기된다.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적자생존 논리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착취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고,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쟁의 자유'는 자본의 세계화와 노동의 유연화, 복지국가 해체 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됐다. 최근 '자유주의'(liberalism)를 재성찰하는 연구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자유주의 흐름에서 일탈한 변종으로 평가한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여러모로 위기에 처한 것은 일탈적 신자유주의를 방관한 것 때문이며, 따라서 자유주의의 부활은 신자유주의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윤 정부가 맹종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대 역행적이고 그 실패가 예정돼 있다. 팬데믹 시기에 많은 이들은 정부가 생명∙생태 중심의 경제와 복지, 시장만능주의 극복, 공공투자 확대, 과감한 재정지출, 돌봄노동 확충 및 처우 개선, 기본소득이나 일자리 보장제 등 새로운 정책 실험, 디지털 혁신, 재난대응능력 향상 등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