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려진 감저 빼떼기잘 말려진 감저 빼떼기
강창석
이런 날은 어릴 적 어머니가 삶아주던 감저(고구마) 빼떼기가 생각이 난다. 별다른 먹을거리,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감저 빼떼기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한다. 잘라서 말린 감저 빼떼기는 그냥 삶아서 먹는다. 매년 감저를 수확하는 계절이 되면 우리는 감저 이삭 줍기를 했다. 서귀포는 대부분이 감귤농사를 하기에 감저 농사는 주로 동쪽 외곽지대에서 했다. 어머니와 함께 서너 번의 이삭 줍기를 하면 우리 많은 가족의 겨울 내내 간식거리로는 충분했다.
주워온 감저는 마당에 펼쳐놓고 선별 작업을 한다. 상태와 크기에 따라서 금방 쪄서 먹을 것, 땅을 파고 감저 눌을 만들어서 저장을 할 것, 잘라서 감저 빼떼기를 만들 것으로 분류를 한다. 일단 상하거나 작은 것들은 썩기 전에 삶아서 먹어야하니 처리 1순위다.
중간정도의 크기에 상태가 좋은 것들은 저장을 한다. 먼저 우영팟(텃밭)에 땅을 깊숙이 판다. 그 위에 짚을 깔고 감저를 넣은 다음 짚으로 덮게를 만들어서 덮는다. 일종의 천연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겨울 내내 썩지 않고 싱싱한 감저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먹을 수 있다.
이후 남은 것들은 감저 빼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일단은 좀 크기가 큰 것들이다. 손으로 잘 마를 수 있는 두께로 일일이 얇게 썰어야 한다. 양이 많은 날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중에는 감저를 놓고 돌리면 얇게 썰어지는 반수동 기계가 나오긴 했지만 그걸 만져보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썰어 논 감저는 햇빛에 말려야 한다. 마당에 말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태양과 가까운 지붕 위가 안성맞춤이다. 사다리를 놓고 슬레이트 지붕 위에 얇게 썬 감저를 올려놓고 겹치지 않도록 펼쳐야 한다. 키가 작아서 안 되는 경우는 기다란 막대기를 사용해서 펼쳐야 한다.
대부분은 우리 집에서 제일 키가 큰 아버지의 일이지만 가끔씩은 어머니나 내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위험성을 항상 상존하는 편, 어머니는 사다리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진 적도 있다. 건조하는 일은 꽤나 번거롭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날씨 상태에 따라서 거둬들이고, 널고, 뒤집고 해야 하니 말이다. 잘못 건조하면 마르지도 않고 까맣게 썩어버리기에 건조하는 과정을 꽤 신경이 쓰인다. 늦가을 학교 갔다 오면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겨우내 비상식량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직접 먹을 간식거리이기에 일손을 안 보탤 수가 없었다.
우영팟 감저 눌 속에 저장된 고구마는 날것으로 먹어도 왜 그리 부드럽고 맛이 있었는지, 지금도 한 입만 하고 싶은 맛이다. 감저 빼떼기도 그렇다. 잘 말려서 큰 자루에 넣어서 잘 안보이는 곳에 보관해 둔 빼떼기를 살짝 꺼내서 입에 놓고 씹으면 오도독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씹으면 씹을수록 녹말 맛이 나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 몰래 훔쳐 먹었던 맛들이다. 누가 보지 않는 나만의 맛이어서 더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방'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