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연합뉴스
출결과 아침 간식 및 저녁 식사 제공, 학급 관리 등을 위한 행정 업무를 함과 동시에, 각 시간대별로 수시로 찾아오는 부모의 퇴근시간에 맞춰 하교하는 아이들도 챙겨가며 정해진 늘봄학교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담당교사의 극심한 노고 또한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한창 어린 아이들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본다는 늘봄학교가 과연 아이들의 성장 및 발달과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만들어진 제도인지,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충분히 고심한 것인지 궁금하다. 한창 뛰놀고 부모와 충분히 교감하면서 학습에 대한 토대를 다져야 할 시기의 아이들에게 정부가 제시하는 늘봄학교는 정말 최선인 걸까.
처음부터 문제설정이 달랐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지난해 KEDI(한국교육개발원)이 19세부터 75세 성인남녀 4천명을 대상으로 실시(7월 31일~8월 17일)한 '2023년 교육여론조사' 결과, 국민 3명 중 1명이 늘봄학교를 꼽았다고 나왔다. 통계만 보았을 때는 국민 대다수가 늘봄학교의 희망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실제 초등 연령대의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질문을 다르게 구성했더라면 과연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위탁하는데 3명 당 1명이 찬성했을 것 같지 않다. 다른 대답이 다양하게 나왔을 것이고, 다른 해법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학교 대신,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다면
우리 회사에서는 최근 오랜 기간 동결된 급여를 인상하는 대신, 전력소모가 많은 동절기와 하절기에 6~8주가량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가 생김으로서 급여는 수년 간 제자리라도 부모들에게 가장 힘든 방학 기간에 직접 아이를 챙길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늘봄교실 한 학기를 경험하고 동계단축근무를 하면서 전국의 영유아 및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희망자에 한 해 자녀 돌봄을 위한 단축근무제를 시행한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학교 대신 부모가 돌봄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를 깨워, 입맛도 없을 텐데 억지로 아침을 떠먹이고, 부랴부랴 학교에 보내느라 부모도 아이도 서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침을 반복하는 대신, 한 시간 늦춰진 출근 시간에 서로 품위를 유지하면서 아이도 챙기고 출근해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해서 직접 아이를 돌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쯤에서 '소는 누가 키우나?'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실제 근로자 입장에서 단축근무를 해 보니 실보다 득이 많다. 단축근무 기간 동안 오히려 근무 집중력이 향상되었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기 때문에 할 일을 더 집중해서 처리하고,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점심시간도 융통성 있게 사용해 업무에 할애하는 것이다. 소모적인 업무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현대 노동의 실질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 <가짜 노동>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이미, 19세기에 건축가 프랭크 로이 라이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등은 폭발하는 생산성에 따라 인간의 노동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문화와 교양을 쌓는데 보내게 될 것이라 예측하며 미래 사회를 그렸다.
실제로 그후로도 눈부신 기술발전과 AI 등이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가짜노동>의 저자들은 이런 역설에 대해 게으름을 죄악시하고, 노동을 신성시하는 청교도주의적인 정신과 빨리 일하면 점점 더 많은 일이 주어지는 노동의 속성 때문에 하루 3시간으로 충분한 일을 8시간으로 늘려 함으로써, 보여주기 위한 일, 즉 가짜노동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모든 산업 분야에 가짜노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억해 보자.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꼭 출근해서 회의하고, 일하지 않아도, 생산성이 우려한 것만큼 떨어지지 않았고, 근무의 질은 향상되었던 경험을 실제로 집단 경험하지 않았던가.
70~80년대와 같이 인구가 폭발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발달하는 시대라면 모를까, 지식 산업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고 각종 첨단기술로 있는 자리에서 어떤 시스템으로도 접속 가능한 지금이야말로, 많은 산업과 직업군에 이전과 다른 노동의 기준과 조건을 설정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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