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한 장면지진의 폐허를 딛고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다소 놀라운 점은 영화 속 인물들이 하나같이 공동체에 닥친 재앙을 그저 담담하게, 어떠한 원망이나 불평 없이 마치 숙명인 양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가족과 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조차 신의 섭리로 순전히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이란의 아이들.
이들의 태도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자신을 덮친 재앙과도 같은 사건에, 저주의 딱지를 붙여놓고 원망과 불평에 자기를 가둔 채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왜 더 많은 행운을 누리며 사는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단단하지 못할까?
요즘 아이들의 나약함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난다. 흔한 예로는, 등교 거부까지는 아니지만 등교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데 열심인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들이 찾아내는 이유는 주로 건강상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가벼운 감기 증상이나 근육통, 생리통 혹은 피곤함 정도를 호소한다.
아침에 아이가 갑자기 이 같은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등교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강압적인 부모가 아니라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정신력이 약하느니 도무지 근성이 없다느니 걱정만 늘어놓아 봐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라면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부모의 일방적 기준이 아닌 자녀와의 합리적 논의 과정을 거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밤새 39도 이상의 고열에 시달렸다든가 해열제를 복용했음에도 체온이 38도 이상 유지되는 경우 등등, 합의된 기준에 도달했을 때만 등교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기준이 마련 됐으면 가족 간의 합의된 약속임을 주지시키고 아이가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한다. 몸에 불편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된 내용을 아이가 잘 준수했을 때, 그날의 오후 학원 일정을 보류시켜 주는 것도 격려 방법이 될 수 있다. 학교보다 학원을 우선시하여 학교가 아닌 학원 출석을 먼저 챙기는 학부모라면 다 소용없는 노력이 되겠지만.
요즘 아이들, 실은 부모 세대도 다를 바 없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대수롭지 않은 실패와 상실, 작은 불편과 고통도 잘 견디지 못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흥분부터 하거나 쉽게 원망하고 빠르게 좌절한다. 삭히지 못한 분함과 해결되지 않은 불만이 쌓이고 쌓여 잔뜩 화가 나 있는 아이들도 적잖다. 이쯤 되면 건강한 에너지 발산은 기대하기 힘들고 스트레스 방어막마저 뚫린 상태가 된다. 몸이든 마음이든 여기저기 아프고 병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재난을 겪고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영화 속 아이들을 이끄는 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하고 있을 한 치의 겨를도 없이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바로 그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모든 것을 잃은 폐허 속에서도 삶을 계속되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지만 이를 긍정하며 극복하면 인간은 더욱 강력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삶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며 삶을 계속 이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반드시 훈련돼야 할 태도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아이가 삶을 긍정하며 위험과 불운을 뚫고 나아가는 단단함을 갖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실패를 경험하고 상실을 겪는 데 예외는 없다. 문제는 실패와 상실을 견디는 근육이 아예 없는 아이들이 많다는 데 있다.
부모가 먼저 과도하게 쳐 놓은 온갖 종류의 보호벽을 허물고, 자녀를 세상 속으로 밀어 넣는 데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아이가 스스로 저항력을 키우며 부모 없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울 수는 기회들을 부모가 빼앗지 않으면 좋겠다.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돌발 상황이 곧잘 발생하는 캠핑이나 야외 활동, 여행 그리고 각종 스포츠 활동을 활용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흥미로운 것은 심지어 극심한 경쟁을 뚫은 아이가, 혹은 몇 시간을 매달려 결국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고야마는 과제 집착력을 보이는 아이가 의외로 별것 아닌 일에서 멘털 붕괴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훈련과 경험치의 한계 때문이다.
아이들은 확실히 훈련된 영역에는 강하고 경험치가 부족한 영역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부모가 육아를 통해 자녀에게 얻고 싶은 결과들이 저절로, 알아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자녀가 쉽게 좌절하고 작은 어려움과 불편도 감내하지 못하는가? 실패와 좌절, 불행에 대한 근육을 키울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불편을 겪고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아이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나약한 아이 뒤에는 나약한 부모가 있기 쉽다는 얘기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마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아이의 모든 문제와 아이가 겪는 불편을 단방에 해결해 주는 부모에게 강인한 아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아이의 문제를 빠르고 손쉽게 해결해 주는 부모보다 아이가 스스로 문제의 쟁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부모가 필요하다. 부모의 일방적 정답 제시가 아닌 아이가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부모 말이다.
부모들이 걱정하는 자녀의 나약한 정신력은 타고나는 특질이 아니다. 부모의 양육태도와 방식에 따라 아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약함의 옷을 벗고 단단하게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평소 꾸준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며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익히게 해야 한다.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현재의 자기 모습이나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늘 현재를 살지 못하고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미래를 갈망하며 사는 한 행복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뿐이다. 따라서 자신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자기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부모와 그 자녀에게 닥친 가장 큰 재난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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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학 전공
경기도 고양시청 평생교육 강사
부모교육 강사
카카오 브런치 작가 / https://brunch.co.kr/@599dace1f4144c1
학원 의존도를 최소화, 두 자녀를 홈코칭으로 양육
양육에세이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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