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적쾌락 북경생활> 앞 표지
후마니타스
일단 첫 페이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가는 1999년, 자신이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겪었던 화장실 에피소드로 책의 문을 활짝 연다. 2001년 처음 중국에 갔던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작가는 도착 첫날, 숙소 화장실이 고장나면서 가장 먼저 '화장실 문제'와 맞닥뜨렸다고 했는데 난 '쥐 문제'와 맞닥뜨렸다.
당시 내가 묵던 유학생 기숙사-지금은 사라진, 당시 쓰촨성 청두의 소수민족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했다-는 나무로 지어졌는데 천장에서 쥐가 달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리만 들으면 이건 쥐가 아니라 말이다. 말이 초원을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다 겨우 다시 잠이 들었는데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쥐들이 쏟아져 내리는 악몽을 꿨다.
기숙사 사감을 찾아가 안 되는 중국어로 '쥐 때문에 천장에 구멍이 뚫릴까 봐 무섭다, 조치를 취해 달라'라고 했다. 기숙사 사감은 깔깔 웃으며 여태껏 쥐 때문에 천장이 무너진 일은 한 번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난 입을 삐죽 내밀고 그냥 돌아왔지만... '우당탕탕', 그날 밤 천장에서 요란한 쥐 운동회가 열렸을 때, 낮에 들었던 사감의 말이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중국은 없다. 매년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고, 화장실 또한 2017년 화장실 혁명 3개년 계획을 발표해 시골의 화장실까지 싹 고쳤다고 한다. 이렇게 빠른 성장 속에서 혹여 어떤 한 부분이 체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책을 읽어보니 비단 빠른 성장만이 문제가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아이 세 명 이상을 나으면 '영웅 엄마'라 칭송받았는데, 지난 1979년부터 '한 자녀 정책'이 엄격하게 시행되었고 지금은 다시 적극적으로 '세 자녀 낳기'를 권장하고 있다는 이야기.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직후에는 춤을 장려했다가 1980년대 초 공공장소의 '춤파티'를 금지했으나 다시 허용했다는 이야기. 위구르족은 한때 베이징에서 가장 잘 나가는 소수 민족이었으나,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로 감시와 제재의 대상이란 이야기.
고단한 서민들... 국가보다 개인에 주목하는 작가
바뀌는 사회주의 국가 정책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휩쓸리는 힘없고 고단한 서민들이 마치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단지 중국에서만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먼발치에서 다른 나라 일을 구경하던 몸을 어느새 책 쪽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작가는 그 와중에도 개인의 해방에 주목한다. 험난한 시기를 넘어온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놓지 않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지난 3년 동안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되돌려 줘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 애도할 기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백지 시위에 참가했다가 소리 소문 없는 검거 폭풍 속에 어디론가 사라진 수많은 저항자들에게도 이름을 찾아 줘야 한다." (242쪽)
책 속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잊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났다. 2005년, 상해로 어학연수 갔을 때 빈부의 격차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던 기억이 났다.
가난한 사람은 한없이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한없이 부자다. 상해에 있는 한 대학교 여학생과 언어교환(그 친구는 나에게 중국어를, 나는 그 친구에게 한국어를 알려주었다)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상대방이 부자이기만 하다면 자신은 첩이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