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된 스마트폰버스 의자에서 긴 노선을 함께 달린 스마트폰
최미숙
그 후로도 여섯 번이나 연락해도 똑같았다. 남편이 앉은 자리 주변에 중고등 남학생이 많았다. 버스에서 스마트폰이 울리면 누군가는 받겠지 했는데 희망 사항이었다. 차고지에 신고하면 도와줄 것 같아 전화하니 그곳도 받지 않았다. 혹시 집에 있을지 모르니 갔다 오자고 했더니 남편은 그냥 포기하잔다. 자기 물건 하나 간수 못 한다고 화도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미 잃어버렸는데 감정만 상할 뿐, 더 큰일에 비하자며 마음을 다잡고 약속 장소로 갔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음식을 먹었다. 이야기하며 놀다 남자들은 술 한잔한다며 헤어졌다. 같이 모임을 했던 언니 아들이 카페를 개업했다고 해 갔다. 4‧10 총선이 끝나고 할 이야기가 많아 다들 입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결과가 아쉬웠는지 열을 올린다. 나는 '일상의 글쓰기' 강의를 들어야 해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데려다준단다. 아홉 시가 다 되어 간다. 시간이 많이 지나 마음이 조급해진다.
집으로 가는데 남자들도 헤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남편은 먼저 갔다고 했다. 집에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면 내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휴대전화를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호가 가자마자 모르는 사람이 받고는 대뜸 주인이냐고 묻는다. 어디냐고 하니 시내버스 차고지라고 했다. 버스 의자에 있는 것을 기사님이 가져왔단다. 찾을 수 없을 거라 여기며 마음을 비웠는데 그걸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니 다행이었다.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다음 날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말도 빼놓지 않았다.
혹시나 있나 확인하려고 집에 들어가 실망하고 있을 남편 얼굴이 떠올라 빨리 알리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남편을 부르며 찾았다고 했더니 놀란다. 그제야 얼굴이 밝아지며 비로소 웃는다. 고맙다고 하기에 앞으로는 간수 잘하라는 말을 겸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소설을 쓰며 남의 집 귀한 아이를 의심했다. 의자에서 발견한 누군가가 이미 숨겼을 것이라 확신한 내가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떠오르는 큰손인 요즘 10대는 보기만 해도 기종과 값을 훤히 안다는데 생각할수록 기특했다. 마음만 먹으면 중고로 팔고 얼마든지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욕심내지 않은 모양이다.
저녁에 퇴근한 막내아들에게 그날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며 학생들이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아들은 요즘은 시시티브이가 있어 잘못 만졌다가는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어 그런 행동을 쉽게 못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어쨌든 견물생심이라는데,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만 봐도 대단하다.
종점까지 꽤 긴 노선인데도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남편이 단체 카톡에 스마트폰 찾았다는 문자를 올렸다. 친구 한 명이 "역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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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석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연을 기사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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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서 빠진 휴대폰이 그대로… 그래도 살 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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