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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인터뷰] 이념 너머 '북한'을 말하는 작가 조천현... 19년 동안 뗏목의 찰나 포착

등록 2024.05.20 07:01수정 2024.05.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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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끝, 중국과 닿아있는 '압록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긴 물줄기다. 지금도 봄이 되면 이천리(804km) 물길을 따라 흐르는 나무 '뗏목'을 만날 수 있다.

"강은 경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이라고 말하는 조천현 작가는 1997년부터 북중 접경 지역 압록강 너머 북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왔다. 그에게 압록강은 자연과 인간,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런 그가 '뗏목'에 집중했다.
 
 모여 있는 뗏목.
모여 있는 뗏목.보리출판사
 
뗏목은 하천의 흐름을 이용해 떼로 엮어 운반하는 목재를 일컫는다. 조 작가는 2004년, 말로만 듣던 '뗏목'을 압록강에서 처음 봤다. 물길을 따라 그저 흐르는 뗏목, 북한 사람의 정감이 묻은 뗏목꾼의 매력에 압도된 그는 무려 19년 동안 압록강을 드나들며 뗏목의 찰나를 포착했다.


이를 책으로 엮어 지난해 2023년 10월, <뗏목>(압록강 뗏목 이야기) 사진 에세이를 출간했다. 지난 저서 <탈북자(2021)><압록강 아이들(2019)> 이후 2년 만이다.

좀 더 일찍 작가와의 만남을 갖고 싶었으나 중국 전시회 일정으로 지난달 25일에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전주에서 열린 북토크 전 작가와 만나 인터뷰 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난달 25일, 전주작은도서관 근처에서 조천현 작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전주작은도서관 근처에서 조천현 작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배진주
 
그저 흘러갈 뿐인 뗏목

- 이전엔 '탈북자'와 '압록강 아이들'을 중심으로 다뤘다면 이번엔 '뗏목'입니다.

"1960년대 초까지는 한강에도 뗏목이 있었다고 해요. 우리나라 고유문화인데, 한국엔 현실적인 수요가 없어지면서 전통문화 정도로 남게 됐어요. 한국에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게 북한에는 지금도 있어요. 역사의 현장을 육안으로 보는 느낌이랄까요?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느껴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지혜와 얼이 묻어 있어요. 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뗏목을 보면서 저의 삶을 대입해 보기도 해요. 인위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뗏목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뗏목 - 압록강 뗏목 이야기, 조천현(지은이)
뗏목 - 압록강 뗏목 이야기, 조천현(지은이)보리
 
- <뗏목>에 실린 사진 중 커다랗게 줄지은 뗏목 사진에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뗏목이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강을 떠다닌다는 게 상상이 안 가요. 어떻게 만들고 조정하나요?

"뗏목은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압록강을 타고 흐릅니다. 겨우내 벌목된 통나무가 상류에 모여요. 날이 풀리면 상류에서 '타리개'라는 물에 불린 참나무 가지로 나무와 나무를 엮습니다. 그럼 이제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여러 개의 뗏목이 됩니다. 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뗏목을 묶어두는 '계벌장'이란 곳이 있어요.


이곳에서 '검척원'이라는 사람이 통나무의 지름과 치수를 잰 뒤 뗏목은 뗏목꾼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요. 천천히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아래로 이동하죠. 굴곡이 있는 물줄기를 만나면 빠르게 움직이기도 해요. 뗏목이 '운봉호'라는 곳에 모이는데, 근처에 댐이 있어 물이 크게 고여 있는 곳이에요. 이때부터는 뗏목꾼이 아닌 작은 배가 끌고 갑니다. 여러 뗏목을 연결해 몸집이 무척 커 장관이에요. 충분히 물에 빠진 나무는 송진이 빠져 튼튼한 목재가 돼요. 제재소를 거쳐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 뗏목은 뗏목꾼이 없으면 부유하는 나무에 불과해요. 오래도록 지켜본 뗏목꾼은 어떤 사람인가요?


"뗏목꾼이 급여가 괜찮은 편이라 들었어요. 북한은 일이 세분화돼 있어 자기에게 주어진 일, 즉 뗏목꾼은 뗏목을 이동하는 일만 해서 여유롭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강이 한적하고 험하지 않기에 헤엄 못 치는 사람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제가 만난 뗏목꾼은 만 18세에서 60세였는데, 제각기 지혜로운 면이 있었어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낚시를 하기도, 비가 오면 비닐 박막이라 해서 텐트 같은 걸 치기도 하고, 술을 숨겨 마신다거나, 화덕을 만들어 음식을 먹기도 했죠. 제게 노래도 불러줬습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출렁이는 물살에 방향을 잡는 뗏목꾼.
출렁이는 물살에 방향을 잡는 뗏목꾼.보리출판사
 
- 뗏목꾼은 북한 사람인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나요?

"지나는 뗏목꾼에 말을 걸기도, 뗏목을 고치기 위해 중국 땅에 오른 뗏목꾼에게 잽싸게 가 말을 붙이기도 했어요. 중국과 북한이 압록강을 중립지대로 정했어요. 국경선 자체는 강에 그어져 있지만 물이 아닌 땅을 밟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죠. 강을 낀 채 대화했어요.

한국 사람이라고는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그쪽도 제가 한국 사람인 건 느낌상 알 거예요. 한 번은 뗏목꾼이 '어디서 왔어?'라고 해 '마포'라 소리쳤어요. 웃으면서 서로 더는 묻지 않았죠. 정치적으로 엮이면 곤란하니 서로 그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일상 대화만 나눴어요."

- 뗏목이 지나는 압록강 유역이 북중 접경지대입니다. 작업이 쉽지만은 않겠어요.

"마을 주민이 탈북자로 신고해 공안에게 붙잡힌 적도 있어요. 최대한 조선족의 차림과 비슷하게 해요. 나름의 위장을 한 뒤 무작정 기다리죠. 뗏목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날이 저물든 밤이 새든 할 것 없이요."

뗏목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조 작가는 개인 작업을 하기 전 다큐멘터리 PD였다. 탈북자 취재 임무를 받고 떠난 길에서 지나칠 수 없는 광경을 맞닥뜨렸다. 식량난에 죽은 북한 여성들이 물 위에 떠다니는 걸 목격한 것이다.

탈북민, 북한 동포의 삶에 궁금함과 답답함을 느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북중 접경지대 탈북민의 삶에 깊이 들어가 묻고 들으며 다큐멘터리, 사진, 글에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았다.

- '북한'이라고 포털 창에 검색하면 각종 정치적인 이슈가 쏟아져요. 핵, 김정은, 러시아 등이요. 그런데 작가님의 책에는 숨 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정치 이데올로기 이면에 있는 진짜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요. 압록강 너머 그들의 일상을 듣고 볼 때면, 제 어린 시절을 마주하죠. 어릴 때 시골에서 살면서 봤던 모습들이 그곳에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마구 웃고... 북한 동포들은 제가 만나본 어떤 한국 사람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스스럼이 없습니다.

솔직하다 보니 서로의 생활을 나누며 정이 쌓이죠. 그들의 집 마당은 사람 사는 맛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작물이 심기고 자라 오목조목 예뻐요. 제 사진을 보세요. 거기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없습니다. 이념이나 정치로 묻을 수 없는 나와 비슷한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작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쉽진 않죠. 혼자 하는 작업이라 가능했어요. 어느 단체에 속하면 그만의 장점도 있겠지만, 어느 한쪽의 이념에 이용당할 위험성도 있어요. 제가 하고자 하는 건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라 혼자의 길을 택했어요.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들죠. 거의 한 달에 보름은 중국에 있습니다."

- 보름이나 있으려면 필요한 것도 많을 텐데요?

"제가 쓰는 장비가 여럿인데 그때마다 다른 게 필요해요. 비디오가 필요한 순간 캠코더가 없으면 무릎을 치는 거죠. '이럴 줄 알았으면 가져올 걸' 하면서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최대한 모든 장비를 다 가져가요. 그러다 보니 짐이 많습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조천현 작가가 중국 난징 골든이글미술관 전시를 기념해 지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조천현 작가가 중국 난징 골든이글미술관 전시를 기념해 지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천현
 
조 작가는 지난해 12월 17일부터 5월 11일까지 중국 난징 골든이글미술관에서 '강'과 관련된 단체 전시에 참여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이라는 주제로 압록강 사진 10점을 선보였다. 4월 25일에는 전주시의 '전주작은도서관' 측에서 마련한 강단에 올라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에서 지난달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사진전이 열린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뗏목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니 '너와집'을 만났어요. 북한에서는 '너세집'으로 불리는데, 지붕, 울타리, 옥수수 저장소 등 모든 게 나무로 이뤄진 집을 말해요. 뗏목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이기에 기록했어요. 더불어 북한의 농업에 대해서도요. 두 책 모두 올해 안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지난달 25일, 전주시 ‘전주작은도서관’에서 조천현 작가가 압록강 ‘뗏목’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전주시 ‘전주작은도서관’에서 조천현 작가가 압록강 ‘뗏목’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배진주
 
그는 취재를 시작한 26년 전과 비교하면 북중 접경지대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조선족들이 살던 초가집도, 학교도 다 허물어졌다.

- 이제까지 수많은 사진을 찍었어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무엇인가요?

"<압록강의 아이들>의 '겨울'에 실린 사진이에요. 언 압록강 위로 아이들이 밝게 뛰어가는 모습이죠. 압록강은 아이들의 놀이터에요. 겨울이면 썰매를 많이 타죠. 새하얀 강에 두 여자 아이가 밝게 웃으며 뛰어가는데... 모든 걸 잊는 순간이었어요. 이념이고 정치고, 잘 살고 못 살고 그런 모든 게 지워진 찰나였죠. 아이들의 해사함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 위를 달리는 북한 어린이.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 위를 달리는 북한 어린이.조천현
 
그는 압록강에서 '자유'를 느낀다. 나라와 나라가 맞닿는 곳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교류하는 모습에 우리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뗏목이 그저 강을 따라 흐르는 것, 또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생각하면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긴 물줄기 / 압록강 이천 리 물길엔 / 지금도 뗏목이 뜹니다 // 압록강 상류 고읍 물동에서 운봉호까지 / 뗏목길 따라 흘러갑니다 // 생명의 강 압록강 뗏목길엔 오늘도 뗏목꾼의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 '뗏목길', <뗏목> 중에서
#조천현 #압록강 #뗏목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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