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한 자리에서 일한 멕시코의 구두 수선공

편리함의 비가역성에 대해 생각하다

등록 2024.06.20 14:07수정 2024.06.2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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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멕시코 라파스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과 삶을 인터뷰한다.[편집자말]
#1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기는 어렵다. 문명도 마찬가지이다.

6월 2일 자 NYT의 한 기사는 지난해 9월 아마존 열대우림 깊숙한 마루보족의 외딴 마을에 스타링크(Starlink) 안테나가 설치돼 초고속 인터넷이 연결된 후 바뀐 원주민들의 일상을 실었다.

뉴욕 타임스의 브라질 특파원 잭 니카스(Jack Nicas)가 2,000여 명의 부족민이 사는 그곳에 일주일을 머물며 취재한 기사였다. 스타링크에 연결된 지 불과 9개월 만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가입하고 왓츠앱(WhatsApp)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타링크는 고립된 부족을 열대우림 밖의 세계와 연결했지만 부족 간의 소통은 오히려 단절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고립을 통해 수백 년 동안 보존되어왔던 부족의 고유한 삶의 방식은 위태로워졌으며 마루보가 직면한 외부의 세상에서 겪고 있는 동일한 문제, 즉 그룹 채팅과 소셜 네트워크 중독, 폭력적인 게임, 미성년자의 음란물 노출 가능성 등을 짚었다.

그 기사를 재가공한 The Post와 TMZ 등 다른 신문들이 그 기사의 단 한 단락 '미성년자의 음란물'을 '포르노 중독'으로 헤드라인을 뽑아 침소봉대하여 내보냈다. 이 내용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마루보 부족에게도 전해졌다.

이 마을의 인터넷 연결에 앞장섰던 마루보 리더인 에노케 마루보(Enoque Marubo) 씨는 이 사실에 격분했다. 잭 니카스 기자는 6월 11일 "아니요, 오지의 아마존 부족은 포르노에 중독되지 않았습니다"라는 후속 기사를 내보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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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오지의 아마존 부족은 포르노에 중독되지 않았습니다"라는 후속 기사 캡 ⓒ NYT

 
이 부족에게 한대에 15,000달러에 달하는 스타링크 안테나를 기증한 자선가 르노(Allyson Reneau)씨는 이 기사를 링크했다. 나도 잭 니카스의 첫 기사를 읽으며 아마존 부족들도 아마존(Amazon) 온라인 마켓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파괴에 대해 즉각적으로 알릴 수 있고 독사에게 물린 사람의 구조요청이 가능해져 헬리콥터 응급수송으로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질 좋은 온라인 수업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10대들 중 한 명은 이제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꾸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상파울루에서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루보가 인터넷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되므로 얻어진 수많은 혜택이 있다. 일부는 "모든 사람이 너무 연결되어 있어서 때로는 가족과도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라고 지적하지만 마을의 리더는 되돌아가는 것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번 문명의 이기에 노출되면 우리 몸과 뇌는 그 편리함에 고착되어 도저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문명의 비가역성이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계속 중미, 남미의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이다.

그들보다 더 많은 문명에 노출되어 살아온 우리가 안데스산맥, 혹은 아마존의 밀림에서 조우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우리의 몸짓과 말에 묻은 문명의 먼지로 인해 혹시 그들의 영혼이 오염되지는 않을지...

#2

라파스 공설시장 한편의 구두 수선공 마르틴 마론(Martin Marron)에게 고장 난 백팩 지퍼를 고치러 갔다. 그와의 얘기 중에 그날이 그가 이 수선가게를 시작한 지 40주년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4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가 이 가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니 내가 감격스러워졌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당신이 축하받아야 할 날인 것 같아요. 옆 식당에서 축하로 식사 한 끼 대접 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온화한 얼굴 표정을 단호하게 바꾸며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가게를 비울 수 없다면 도시락으로 배달해 드릴지를 물었다. 여전히 손사래를 쳤다. 왜 한사코 거절하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침내 이유를 찾아냈다.

"오늘 아침을 먹었거든요."

이미 오후 1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비록 다 닳은 신발을 꿰매고 해진 가방을 깁는 가난한 나날이라도 남에게는 대가 없이 밥 한 그릇 대접받는 일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성정의 구두수선공. 눈이 안 좋아진 마르틴의 은퇴 후 꿈은 작은 목장 하나 구해서 남새를 가꾸고 닭과 염소 몇 마리 키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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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 대접받기를 거절하는 가난하지만 순박한 라파스의 사람. 나의 말과 행동이 혹시 이들의 영혼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콩키스타도르들이 옮긴 천연두로 면역력이 없던 아즈텍 제국의 인구가 1세기 동안 50%에서 90% 정도로 급감했던 역사가 머릿속에 맴돈다. ⓒ 이안수

 
그 공설시장의 치즈가게, '궁수자리'는 마리사(Marisa Isabel) 부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우리는 샐러드에 넣을 치즈를 이곳에서 사곤 한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한번 사용할 양을 산다. 너무 소량이므로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날은 잔돈이 없어서 지폐를 내고 거스름 동전 돌려받기를 거절했다. 엄마를 돕던 딸 마리아나(Mariana Guadalupe)는 싼 치즈를 건네면서 멕시코의 전통 우유과자 하몬시요(Jamoncillo) 두 개를 슬쩍 넣어주었다.

이곳 로컬 슈퍼체인 아람부로 슈퍼마켓(Supermercado Aramburo)에는 그 마켓에서 산 고기를 숯불에 구워주는 서비스가 있다. 이 편리한 서비스를 처음 이용하면서 20년 동안 고기만을 구웠다는 안토니오(Ansonio) 씨가 우리 고기를 굽는 동안 가정에서 바비큐를 하기에는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 주는 이 신선한 아이디어와 노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우리 고기를 싸면서 슬쩍 구운 큰 양파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가 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통양파구이를 처음 먹어본 우리는 그 맛에 반해 고기를 살 때는 꼭 양파를 함께 산다.

자전거 수리점, 몽키 바이크(Monkey bike)의 세르히오(Sergio Manuel Alba Pino) 씨에게 우리가 이 동네에 체류할 3개월 정도만 탈 수 있는 중고 자전거를 빌릴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는 빌리는 값이나 사는 값이나 비슷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뒤 안장이 낮은 자전거 한 대를 가져와 손을 본 다음 아내에게 내밀었다.

얼마를 지불해야 하느냐고 묻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우선 타보세요!" 그렇게 자전거를 받고 그가 봉사하고 있는 MTB클럽에 참가해 함께 라이딩을 즐겼다. 며칠 뒤 그가 말했다. "이 자전거는 이제 당신 거예요." 아내는 의아해 다시 물었다. "아직 돈을 드리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말을 하나요?" 그의 대답은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옥스나르(Oxnar)가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 자신의 일을 끝내고 오니 밤이 되었다. 그는 우리 부부의 멕시코 아들로 연을 맺었다.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 때 하루 한 끼 이상 식사를 함께했고 그 함께하는 동안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다 보니 부모와 아들로 가닿았다. 그가 백팩을 열고 도자기 그릇 2개를 꺼냈다. "두 분이 뜨거운 수프를 드실 때 드실 그릇이 없다는 생각을 제가 미처 못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불과 책상, 집기 일체는 그가 가져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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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다리가 불구가 된 떠돌이개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보살피고 있는 맥스. ⓒ 이안수

 
이 동네에는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있다. 그의 오른쪽 뒷다리가 골절되어 사용하지 못하므로 유난히 눈에 띈다. 그 개에게 마음이 쓰여 저녁시간에 슈퍼마켓 '알리세르 알렌데(Aliser Allende)' 앞에서 타말(tamal)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께 그 개의 사연을 물었다. 그분은 "맥스(Max)를 말하는 건가요?"라고 되물어 확인한 다음 말을 이었다.

"그 개는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진 뒤에 이 동네로 왔습니다. 동네 사람 누군가가 '맥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 후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면서 함께 거두고 있습니다." 비로소 다리가 불편한 그가 굶어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비밀이 풀렸다.

평화라는 의미의 'La Paz'에서 사람들에 취해 떠나지 못하고 있다. 늘 조심스럽다. 이곳의 평화를 우리가 오염시키고 있지 않은지...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멕시코여행 #라파스 #아마존 #마루보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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