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소비 시대, 끝없는 소비의 욕망

[김성민의 행복철학] 현대사회의 소비 문화와 욕망의 끝없는 고리

등록 2024.07.01 17:06수정 2024.07.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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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17세기 근대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생각하는 나'가 나의 인식과 존재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은 비판 이성과 자기를 돌아 볼 줄 아는 자기의식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한편 지식으로 권력화한 도구적 이성으로 자본주의 합리성의 토대가 되었다. 즉 계산 가능성으로서의 이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합리성의 실용을 극대화하고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nsumo, ergo sum)'

지금 후기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정체성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프랑스 철학자 보들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자신의 저서 <소비의 사회>(1970)에서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소비의 사회'라고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소비'란 무엇인가? 사라질 소(消)에 쓸 비(費)를 합한 소비라는 한자어는 돈이나 물자, 시간, 물자 따위를 들이거나 써서 없앤다는 뜻이다. 영어 consume도 라틴어 con(모두)과 sumere(잡아먹다, 빼앗다)의 합성어로 써버리다 혹은 없애 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학에서 소비를 "만족을 창출하기 위하여 시간과 자원을 결합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말할 때, 만족한 소비는 나의 행복감을 충족시켜주는 도구적 행위일 수 있다. 급여 생활자가 월급 날짜를 기다리는 것은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고, 원하는 물건을 사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문화생활을 누리는 등 직접적 만족감을 월급이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대다수는 이미 카드 결제를 통해 월급을 '다' 써버리거나 '더' 써버리거나 한 후일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다. 생산은 되었으나 소비가 없다면 경제적 공황이다. 전기 자본주의사회의 생산이 소비(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면,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이 수요를 앞지르는 소비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비의 대상은 물질부터 문화자원까지 넘친다. 모두는 소비의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소비의 모든 대상은 상품이다. 상품이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이 세상에 생산된 물질적 혹은 문화적 재화들이다. 상품의 존재 근거는 이윤 창출이다. 상품은 어떤 '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호(記號, sign)'로서 그 물건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자가 '사용 가치'라면 후자는 '기호 가치'인 셈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탈 것'이나 '운송수단'으로서의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부여된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기호 가치도 표방한다. 즉 사회적 욕망이 기호적 차이화의 욕망으로 바뀐다.

보들리야르에 따르면 어떤 상품(사물)은 특정한 사회적이고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호 가치를 가진다. 희소성이 높은 상품은 어떤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이 소비함으로써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의 차별화된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가졌다는 기호로 작용한다. 이제 사람들은 상품의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기호 가치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특정한 상품을 소유하는 것은 그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타인에게 보여지는 일종의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상품의 사용 가치보다 차별적 과시를 위한 기호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즉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체계이며, 기호체계가 진정한 소비주체로서 개개의 사람은 기호체계의 소비를 집행하는 대행자"일뿐이다.

달리 말하면 기호체계는 욕망의 재생산 체계와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결여(결핍)'를 욕망한다. 내게 없다고 느껴지고 생각하는 것을 소비로 채우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상품(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나를 욕망하게끔 한다. 그때 욕망이란 나로부터 출발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소비하는 것은 환상이고 이미지다. 애당초 내게 없던 욕망이 나를 추동한다. 현대 소비사회는 나에게 "소중한 나를 위해 물건을 사라"고 나르시시스트적 환상을 속삭인다.

또한 소비사회에서 욕망은 경쟁을 낳는다. 경쟁적 소비는 과잉 소비로 이어진다. 소비는 소비자의 능동적 자유의지라기보다는 타인과의 '차별화' 욕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 자동차를 소비하는 것이 당신의 성공",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라는 광고 콘셉트는 자동차와 집의 사용 가치보다는 상징 즉, 기호 가치를 소비하는 경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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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의 지속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 ⓒ Unsplash Towfiqu barbhu

 
소비는 '언어'가 되었다. 그 언어 이면에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를 '구분 짓기'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구별짓기>(1979)에 따르면 차이를 위한 소비는 '너와 나의 구별짓기'다. 명품의 소유는 희소성의 소비다. 사람들은 그 사물 자체를 소비하기보다는, 자신을 타인과 구별짓는 기호로서 사물을 대상화한다. 소위 상류층은 적극적으로 달아나기 소비(flight)를 함으로써 차별화한다. "매진 임박", "한정 수량"이라는 종편 생중계는 어서 상품을 소유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이끈다. 포모 증후군(FOMO Syndrom: Fear of Missing Out)의 일종이다.

소비는 '야누스'다. 군중 속의 고독이 형용모순이듯, 소비사회에서 '풍요 속의 빈곤', '풍요 속에 불평등'도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이다. 경제성장의 지속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

소비는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는가? 소비는 소비하는 주체에게 소비만큼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현대사회에서는 소비로 말하며, 소비가 언어다. 누구도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조건 속에 태어나고 조건적 자유를 누린다고도 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자유란 없다.

하지만 우리를 불편케 하고 부자유스럽게 하는 조건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나 없애려는 노력이 자유이고 행복이다. 돈 없이 살 수 없지만 돈만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쇼펜하우어가 얘기하듯이, 자신의 내면적인 만족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를 소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 안에서 평화롭게 살기보다는 남에게 나를 내어 맡긴다. 욕망은 계속 미끄러짐의 연속이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쥐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를 되돌아보며 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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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민 |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이사장 ⓒ 국민총행복전환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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