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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하나의 생태계로 못 보는 환경부, 허탈하다

[세종보 천막 소식 65일-66일차] 근거없는 세종보 재가동... 차라리 '레킹볼'을 들자

등록 2024.07.04 14:52수정 2024.07.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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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장 지난 3일 비가 내린 뒤의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위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았네."

금강 하천 둔치에 임시 마련한 텐트, 소위 '재난안전본부'에서 내려다보니 참 꿋꿋하게도 세종보 농성천막은 비가 퍼붓던 지난 밤을 잘 버텼다. 물에 약간 잠겼지만 떠내려갈 만큼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는 이상은 잘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천막 지붕에서 한 녀석이 알짱거린다. 할미새다. 검은등할미새는 천막을 칠 때부터 많이 보였던 새 중 하나다. 강변과 천막을 경계없이 넘나들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언제부턴가 할미새 유조들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마리인 것 같다. 추측컨대 태어나자마자 천막이 쳐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이곳에서 60여 일을 보내면서 할미새도 우리도 서로에게 길들여진 것 같다. 

사실 천막 생활은 녹록지 않다. 바람이 불면 그늘막이 주저앉을까, 비가 오면 물이 너무 불진 않았나, 새벽에도 천막을 지키는 이들에게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천막을 정리하고 있으면 아무런 기별도 없이 많은 이들이 천막을 찾는다. 천막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많은 이들과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는 그때고? 근거없는 세종보 재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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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활동가 1차 결의대회 행진 모습 200여명의 활동가, 시민들이 환경부까지 행진해 규탄집회를 열었다. ⓒ 서영석

 
지난 3일, 환경부 중회의실에서 물관리정책실장과 수자원정책관 등을 만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과 없는 면담이었다. 환경부는 뭔가 해결할 자세로 그 자리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물관리실장은 "당신들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주문으로 말을 시작했다. 해결할 자세였다면 보철거시민행동에서 낸 성명서 등으로 요구사항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고 반박하거나 토론을 했을 텐데 그런 태도는 아니었다.

물관리정책실장은 '보를 개방하고 수질이 나빠졌다'며 '보를 무조건 연다고 수질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내놓지는 못했다. 사실 '보가 개방되면서 수질이 좋아졌다는 발표는 환경부 스스로가 해왔지 않냐'고 반박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들어보니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달라졌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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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강물 불통 정부 세종보 재가동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진 중 ⓒ 서영석

 
그들은 '보와 수생태계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 기간이 짧았다'며 '보를 오퍼레이트(operate)하며 다시 살펴야 한다'고 세종보 재가동의 이유를 댔다. '탄력운영을 하면서 보를 열고 닫는 문제를 판단하겠다'는 답이었다.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앞으로 잘 알아서 하겠다'는 답변에 가까웠다. 세종보 가동하며 6년을 담수했고, 6년을 개방했다. 무려 12년간의 데이터는 어디로 간 걸까? 

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서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가 보 처리방안을 결정할 때에도 환경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환경부는 과거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추진할 때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확보한 자신들의 입장과 보의 수문 개방 이후에 회복된 강의 데이터를 손에 쥐고 있다. 보수 언론이 재자연화 정책을 비판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박 자료를 발표했던 이들이다. 그럼에도 정권에 따라 180도 달라진 이들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물관리 일원화로 인해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건너온 공무원도 있었다.


200만 원짜리 명함... 우리는 레킹볼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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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장관에게 입장을 전달하려는 활동가들 작년 11월, 세종보 공사 현장에 온 환경부장관에서 입장을 전달하려했지만 장관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국토부에서 넘어온 환경부'는 강을 하나의 생태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보를 오퍼레이트 한다'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데이터를 강조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이전에 축적된 데이터를 모두 부정하며 무엇을 다시 조사한들, 만약 정권이 바뀌면 또 그것에 맞춰 이전 데이터를 부정할 것 아닌가. 이들은 환경부가 아니라 여전히 국토부였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링 회사의 임원을 대하는 듯했다. 강은 살아있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인식이 없고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그 시각부터 틀렸다. 

대화를 마치고 나가면서 그들은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믿지 못할 것 같다. 2023년 11월, 환경부장관에게 입장문을 전달하려고 세종보 앞에서 차를 막아섰을 때 받았던 물관리실장의 명함은 '200만 원짜리'였다. 그때에도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지만, 이틀 뒤 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간사의 전화를 받지 않았었다. 대신 환경부 장관 차를 잠시 막았던 두 명의 활동가는 고발을 당했고, 최근 벌금 200만 원을 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의미없는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사실 허무했다. 강을 틀어막는 보, 국민과의 대화 없이 철벽을 치는 환경부를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심정이 더 절실해졌다. 차라리 레킹볼(wrecking ball, 철거작업용으로 쓰이는 거대한 철구)을 들어야 겠다는 심정이었다. 이대로 강이 죽는 것을 볼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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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주변에서 노는 오리와 할미새 흰뺨검둥오리와 할미새가 농성장 주변을 알짱거리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강이 썩고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데이터로 증명이 되는데도 환경부는 계속 그 길(세종보 재가동)을 가겠다고 고집합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은 이 악순환을 온몸으로 막는 우리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지난 6월 27일에 열린 1차 결의대회에서 영상을 찍어주었던 세종시민 강원중 감독(도요필름)이 편집한 영상을 보내주셨다. 거세게 흐르는 강처럼 보에 묶여있는 강의 해방을 위해 진군하는 듯한 편집이 인상적이었다.(영상 링크 : 세종시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유) 특히 마지막 발언을 해주신 이한주 목사(성서대전 실행위원)의 말을 들으며 복잡했던 마음을 위로했다. 

4대강 죽이기에 부역한 일부 언론과 환경부는 말과 글로 칼로 우리에게 상처를 내려고 안달이다. '안전', '불법',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하면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끌어다가 제 욕망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야생동물들과 천막농성장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든든한 방패다. 최후의 보루를 지키는 방패들이 있어 오늘도 한 발 나아간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환경부 장관이 교체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명박의 '4대강 망령'을 부활시킨 한화진 장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환경장관 후보자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면서 '녹색뉴딜', '물류 대혁명'을 외쳤던 MB의 그림자가 비친다. 국토부가 장악한 환경부가 강의 생태적 가치를 몰각한 채 4대강을 죽여 토건족들에게 흥청망청 혈세를 나눠준 자의 후예가 되는 건 아닐까? 마음이 다시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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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검은등할미새 금강이 계속 생명을 품고 흘러갈 수 있길 바란다. ⓒ 이경호

 
 
#금강 #세종보 #환경부 #낙동강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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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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