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동맹'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등록 2024.07.11 11:43수정 2024.07.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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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이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한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이라는 표현을 쓰자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2일 정치·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를 언급하며 '정신 나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며 김병주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사과는 국민의힘이 해야 한다며 버티는 바람에 양당 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결국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우리 당 의원의 거친 언사에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하고, 국민의힘도 자당 논평 속 '한미일 동맹'이 실무적 실수로 인한 적절치 못한 표현이었다고 사과하며 이를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정정함으로써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동맹이란 둘 이상의 국가가 공동의 이익이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합하여 함께 행동하기로 한 약속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의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국의 안전보장에 관한 것이다. 우리와 미국 사이에는 1953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지금까지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으니 두 나라가 동맹 관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상호협력과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어 있어 그들 두 나라도 동맹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동맹이라고 볼 만한 어떤 공식 관계도 없다. 공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그런 점을 간과하고 공식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이라는 용어를 썼다니 참 한심하다. 혹은 한국과 일본이 동맹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일부러 그런 용어를 쓴 것일까?

이웃한 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만 우리와 일본이 동맹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데에는 장애가 될 사유가 많다. 무엇보다도 두 나라 사이에 역사 인식의 차이가 너무 커서 식민 지배의 구원이 아직 해소되지 못했다. 많은 한국인의 가슴 속에 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에 대한 분노가 아직 식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그간 몇 차례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효과를 뒤엎고도 남을 망언으로 번번이 우리의 감정에 불을 질렀고, 강제 징용과 군 위안부 문제 등에서 시종일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2019년에는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을 고용한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서 공업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기도 했다. 우리의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줄 속셈이었다.

또 일본은 우리 영토의 일부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독도는 지금 우리가 실효 지배하는 중이고 여러 문헌을 통해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우리 영토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도발하고 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기술한 초등학교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매년 발간하는 방위백서에서 20년째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사 활동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가 하면 그 부근에서 작전 중인 우리 해군 함정에 그들의 해상 초계기가 수백 미터 거리까지 근접해 위협 비행을 하기도 한다.

우리와 일본이 동맹을 맺는 데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양국 간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일 수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오랜 전쟁 끝에 패전으로 인해 국력이 고갈되고 주권까지 포기해야 했던 일본에 재건의 발판이 되어 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미군이 일본을 병참기지로 활용함에 따라 침체했던 일본의 제조업이 활성화되고 경제 전반의 생산, 고용, 이윤이 급증했던 것이다. 당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일본의 한 고위 정치인은 하늘이 일본을 돕는 것이라며 기뻐했다고 전한다. 오늘날 일본 우익의 정서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할 정도로 초장기에 걸친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죽고 일본은 사는 것이다. 그런 일본을 동맹 관계로 끌어들여 한반도 안보 문제에 개입할 구실을 주면 그들이 과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할까?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에 대해서도 유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53년에 체결한 지금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실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최초 안보 조약이 아니다. 1882년에 조선과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바 있고, 그 제1조는 만일 제3국이 조약의 한 당사국을 불공정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대하면(deal unjustly or oppressively) 다른 당사국은 즉시 원만한 조정에 이르도록 주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방위조약처럼 무력에 의한 개입을 상정하고 있지 않지만, 조약 상대국과 제3국 사이의 분쟁에 대한 개입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안보 조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05년 일본이 이른바 을사늑약을 체결하려고 조선을 억압할 때 고종황제는 이 조항을 들어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밀서로 개입을 요청했지만, 굴욕적으로 무시당했다. 개입은커녕 자기들이 필리핀을 차지하기 위해 조선을 일본이 지배하도록 양해했던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다.

동맹이 우리를 지켜주는 게 아니다. 바로 지금 남북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동맹국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향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1905년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하물며 우리와 안보상의 이해관계가 다른 일본과의 동맹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결국 믿을 것은 빈틈없는 안보 태세를 스스로 갖추는 것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인접 국가들이 나토라는 세계 최강의 안보 동맹체제에 가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넉넉지 못한 나라 재정을 털어 거액의 무기를 사들이는 것을 보라.
#한미일동맹 #한일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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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주로 책을 읽고, 간간이 번역일도 하며 소일한다.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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