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농성 천막. 세종보 상류 300m 지점에 있다.
임도훈
나는 지금 세종보 상류 한두리대교 아래에서 이 글을 시작하고 있다. 세종보가 가동된다면 수몰될 금강변의 한 평 남짓한 천막 안이다. 세종보 담수 백지화와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하며 천막을 친 지 100일이 흘렀다. 4대강 16개 보 중 유일하게 열려있는 세종보, 이곳마저 닫히면 4대강은 15년 전, 악몽 같았던 MB시대로 퇴행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떴다.
'기후대응댐'.
김완섭 신임 환경부 장관이 최근 14개 신규 댐 후보지를 밝히면서 만든 신조어이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에 '녹색 뉴딜'이라는 조어를 붙였던 것과 판박이다. 하지만 4대강사업은 지역 경제를 살리지도, 3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못했다. 윤 정부가 선언한 '제2의 4대강사업', 즉 14개 신규 댐 건설도, 토건족의 배만 불리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계와 국민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물 정책 정상화를 위한 '4대강 청문회'가 필요한 까닭이다.
[1기 국가물관리위] 3년 반 동안의 심사숙고... 세종보 해체 결정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을 비밀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면서 온갖 탈법과 불법을 자행했다. 윤석열 정부도 문재인 정부 때 결정한 금강·보처리방안을 뒤집으면서 많은 위법과 탈법을 저질렀다. 두 정권 모두 강을 댐과 하천준설 등의 토건 사업, 돈벌이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명명하는 등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수많은 어용학자와 전문가, 언론을 동원했다. 국정원과 검찰 등의 국가기관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단체와 학자들을 탄압했다. 소위 당근과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아무 설명도 없이, 민주적 절차도 생략한 채 물 정책 퇴행을 결정했다. 이명박 정권과 이런 점은 달랐다.
4대강 청문회가 열린다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하는 건 문재인 정부 때 마련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취소한 윤석열 정부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정황이다. 우선 문재인 정부 때의 상황부터 복기해 보자.
문 정부는 2017년 11월,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의 승촌보와 죽산보를 전면 개방했다. 4대강 사업 이후에 나타난 녹조 창궐, 물고기 떼죽음, 수질 악화, 악취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수문개방에 따른 변화상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조치였다.
보 개방 이후 강은 빠르게 회복했다. 녹조와 악취가 사라졌다. 강물을 흐르게 하자 시궁창 펄은 씻겨나갔고, 대신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수질은 좋아졌고, 모래톱 위에 사라졌던 야생생물, 멸종위기종들이 찾아왔다.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가 2021년 1월 18일, 세종보 등의 일부 보 해체를 골자로 한 금강과 영산강의 보 처리방안을 확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은 지난했다. 4대강 조사평가단은 2017년부터 만 2년 동안 보 개방 모니터링 결과를 분석하고,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경제타당성 평가를 했다. 이후 대통령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도 1년 6개월 동안 찬반 의견을 가진 전문가 등의 심도 깊은 연구와 분석, 심의 의결 과정을 거쳐 2021년 1월 18일 보 처리방안을 확정했다.
3년 6개월, 이 기간만 소요된 건 아니었다. 4대강사업을 완공한 2012년부터 진행된 수질과 수생태 등의 과학적 데이터를 종합해서 분석한 결과였기에 모니터링 기간을 따진다면 총 9년여 동안 축적된 과학적 연구 성과였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을 통해 보 처리방안을 결정하겠다'고 공언했던 윤석열 정부가 이를 무위로 돌리는 데 들인 시간은 단 15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