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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진단] 8월 8일은 섬의 날 ...섬의 가치와 섬 사람들 삶의 질 개선에 초점 맞춰야

등록 2024.08.08 15:25수정 2024.08.0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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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섬의 날'에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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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윤

 
[기사 보강 : 8일 오후 3시 56분]

8월 8일, 오늘은 '섬의 날'이다. '섬의 날'은 소중한 삶의 터전인 '섬'의 가치와 중요성을 국민과 함께 공감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올해 제 5회 섬의 날은 '섬, 좋다'는 주제로 행정안전부와 충청남도, 보령시가 주최하는데 8일 저녁 기념식을 시작으로 9~10일에는 섬연구소에서 만든 <백섬백길> 걷기 대회도 열린다. 백섬백길 추진위원이자 섬의 날 홍보대사이기도 한 영화배우 류승룡과 함께 참가자들이 백섬백길 72코스 보령시 삽시도 둘레길과 73코스 효자도 둘레길을 걷게 된다.

<백섬백길>은 섬연구소가 다년간의 현장 답사를 통해 우리나라 4000여개 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 100개를 선정해 길마다 숨겨져 있는 역사, 문화, 스토리를 찾고 지도를 그리고 교통편 숙식 등 편의시설까지 섬과 섬길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취합해 만든 대한민국 섬둘레길 이름이자 웹사이트(https://100seom.com )다. 100개의 섬 100개의 섬길을 하나로 연결했으니 백섬백길이라 이름 짓고 지난해 7월 사이트를 열었다. 이 사이트에는 100개 섬길 728.4㎞에 대한 정보들이 들어 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육지 사람 대부분은 여전히 섬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또 섬의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섬을 이색 여행지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섬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영토적 가치다. 영토(領土)란 한 국가가 다스리는 땅을 의미하는데 국제법상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토지 영역을 가리킨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섬들도 육상 영토의 일부분으로서 중대한 가치를 가진다. 거기에 더해 섬은 육상영토만이 아니라 해상영토의 첨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우리나라 해상영토의 시작점인 영해기점 23곳 중 20곳(유인도7개, 무인도13개)이 섬에 있다. 그에 반해 육지부의 영해기점은 3개뿐이다. 섬들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육상영토보다 4.5배나 큰 해상영토(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 등)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섬이 있어 더 많은 어족자원과 바닷속 지하자원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영해·국경을 지키는 파수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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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윤

 
영해기점이 아니더라도 동서 남해 바다 가장 외곽의 섬들은 중국이나 일본, 북한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지대다. 섬은, 섬사람들은 영해와 국경을 지키는 파수꾼들인 것이다. 2014년 태안의 서격렬비도란 섬을 중국인이 매입하려 한 적이 있다. 다행히 가격 협상이 결렬되어 서격렬비도는 팔리지 않았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정부가 서격렬비도를 포함한 8개의 무인도를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서격렬비도가 중국인 손에 넘어갔다면 어찌됐을까? 독도 못지않은 영토 분쟁의 씨앗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소유권이 중국인에게 넘어간다 해서 섬의 국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무인도인 그 섬은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있어서 지금도 풍랑이 거세면 중국 어선들이 떼로 몰려드는 곳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우리 바다를 무단으로 넘나들며 약탈적 어업을 자행하는 중국 어선들이 중국인 소유의 섬이 된 서격렬비도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을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는 서해의 외딴 섬이 매물로 나온 사실을 중국인이 어찌 알았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섬의 가치를 새삼 되새겨야 할 이유다.


나아지지 않은 섬사람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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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리고 사람들 ⓒ 강제윤

 
섬의 날은 섬사람들의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섬의 날이 제정된 뒤에도 섬사람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섬사람들은 여전히 육지 사람들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산다. 가장 기본적 권리인 이동권, 의료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거문도, 가거도, 백령도, 대청도 같은 먼바다 섬 사람들은 지금도 1년에 100일씩이나 되는 여객선 결항으로 이동권을 제약당하며 살아간다. 가까운 바다 섬사람들도 연평균 60-70일씩 교통단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73개 작은 섬사람들은 여객선이 전혀 운항하지 않는 교통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해 주는 여객선 공영제가 조속히 시행돼야 섬들은 교통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섬사람들은 또 생명이 걸린 의료기본권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흑산도나 백령도, 울릉도 등의 섬에서는 교통사고 등 응급환자가 제 때에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일도 적지 않다. 육지에서라면 살았을 목숨들이다. 섬에도 보건소가 있지만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는 어렵다. 섬의 보건소에는 초보 의사들인 공중보건의들이 군복무 대신 근무한다. 하지만 이들은 임상 경험이 많이 부족한 예비 의사들이다. 작은 섬의 보건소는 공중보건의조차 없다. 보건소가없는 섬들도 허다하다. 섬에는 의료 혜택을 전혀 못받고 사는 국민들도 있는 것이다.


위급시 응급헬기가 뜨기도 하지만 야간이나 악천후에는 무용지물이다. 섬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생명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울릉도, 백령도, 흑산도, 거문도 같은 원거리 주요 섬들에는 응급 의료 시설과 인력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중한 생명을 잃는 일이 지속될 것이다.

수백수천억 토건사업에 쏟아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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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윤

 
그동안 섬들에도 수많은 개발 사업이 있었다. 방파제, 물양장, 교량, 도로 등 토건사업에 수십조의 정부 예산이 투자됐다. 지금도 여전히 도서종합개발사업이나 어촌신활력 사업, K관광섬 사업 등의 이름으로 수백억, 수천억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토건이나 관광 사업 등에만 주로 투입될 뿐 정작 가장 중요한 해상교통이나 의료문제 해결 등 섬 주민 기본권 보장 사업에는 예산이 거의 투입 되지 않고 있다. 섬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섬의 날 기념행사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섬 주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덧붙이자면 8월 8일을 섬의 날로 정한 것은 재고 되야 마땅하다. 이즈음은 미역 채취나 농사, 여름 피서객 맞이 등으로 섬이 가장 바쁜 철이다. 그래서 섬의 날인데 정작 주인공인 섬주민들은 참가 하기 어렵다.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도 행사에 참가 하는 이들도 다들 힘들다. 지난 몇번의 섬의 날 행사가 이미 증명해 주었다. 실상 8월 8일은 섬이나 섬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이다.

8월8일을 섬의 날로 정한 것은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를 뜻하기 때문이라 한다. 섬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8월 8일로 정했다는 것이다. 날자는 정부가 공모를 통해 정했지만 공모로 정해질 일이 아니었다. 무한한 가능성이 어디 섬에만 있겠는가? 제정 당시에도 나는 공모를 반대했다. 섬과 관련된 의미 있는 날자로 정해야지 기념일이 공모로 정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공모로 정해졌다. 섬주민들이 함께 하기 좋은 섬이나 섬사람들에게 의미 깊은 날로 바꿔야 한다. 섬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섬발전촉진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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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강제윤씨는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입니다.
#섬의날 #8월8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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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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