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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전히 보이스피싱에 '낚이는' 이유, 뭐냐면

사기 당할뻔한 노인 사례를 보며... AI시대, 이제 '누가 봐도' 스팸 같은 스팸은 없다

등록 2024.08.17 18:51수정 2024.08.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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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잠깐만요!"


나는 서울 한 지역에서 7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나를 향해 꽤 다급한 목소리로 붙잡아세운 사람은 회사 건물 경비원이었다. 얼굴이 낯익은 남자 어르신이었다.

출퇴근길 오고가며 매일 인사도 드리고 가끔은 시시콜콜 이야기도 나누던 분이었다. 종종 컴퓨터나 프린터기가 안 되면 나를 찾으시곤 했는데,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그때마다 해결해드리곤 했다. 사실 컴퓨터에 익숙하면 굉장히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 분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 안타깝다는 마음을 가진 터였다.

며칠전 어느날에는 또 나를 또 부르시길래 갔더니, 이번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로 내게 눈짓으로 자기 전화를 좀 대신 받아달라고 하셨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일단 뜨거워진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여보세요?"

이 남자 어르신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어떤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받아들자 상대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나는 한 번 더 "여보세요?"를 외쳤고, 상대방은 답이 없었다.


나는 이상하다싶어 어르신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상대방이 누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때 '뚜~뚜~'하면서 전화가 끊겼다. 그제서야 직감했다. '이거 이상하다!'고. 전화를 다시 건네드리면서 누구냐고 이번엔 말로 물었지만, 어르신은 자기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문자를 하나 보여주셨다. 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전화번호였는데 그것부터 상식적이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어르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문자 내용은 "이체 완료 : 12,970,300원. 아래 번호로 전화(1820-xxxx)"라는 식이었다.


스팸문자는 '누가 봐도' 스팸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어르신은 알아채지 못했다.

이 어르신은 이 금액이 이체됐는가 싶어 의심없이 정말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보이스피싱 사칭범은 소위 '낚기' 위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금전적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큰일날 뻔한 상황이었다.

젊은 세대인 나도 '혹'하는 스팸 문자

a  보이스피싱과 스팸문자는 일상이 되었다. (자료사진)

보이스피싱과 스팸문자는 일상이 되었다. (자료사진) ⓒ bermixstudio on Unsplash


이제 보이스피싱과 스팸문자는 일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스마트폰에 정신을 뺏기기 일쑤이다. 스팸을 차단해 주는 어플이나 통신사 부가서비스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스팸으로 설정한 필터링에 걸리지 않도록 보낸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오는 스팸문자는 로또(LOTTO) 당첨 번호를 알려준다며 확인되지 않은 주소 링크가 담긴 내용이다. 평소 로또를 사지도 않거니와 앞으로 로또 맞을 확률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팸 필터링 문구를 'LOTTO'로 설정해 놓았다.

그러나 보내는 이들은 이런 걸 미리 예측이라도 한듯 'L@TT@', 'LQTT0'로 바꾸거나, 더 나아가서는 특수문자를 사용하여 로또를 표시해서 보낸다. 막으려고 벽을 세워두었는데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는 스팸문자에 놀라울 따름이다.

a  스팸 필터링에 걸리지 않게 변형해서 보내는 스미싱 문자

스팸 필터링에 걸리지 않게 변형해서 보내는 스미싱 문자 ⓒ 백세준


번호가 이상하거나 문자 내용이 이상하면 그냥 무시하긴 하지만, 어떨 때는 젊은 편인 나조차 그 내용에 혹할 때도 있다.

며칠 전, 지역번호 032로 시작하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내용은 층간소음행위로 누군가 나를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우리 아파트 입주민 단체 메시지방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제발 좀 조용히 걸어주세요", "발망치(발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요"라는 내용이 올라온다. 우리집도 어린 아들이 있고 한창 뛰어다닐 나이라서, 나는 순간 내가 혹여나 아래층에 피해를 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514억 증가한 피해규모... 이 '스팸 공화국'을 어찌할까

a  교묘한 스미싱 문자

교묘한 스미싱 문자 ⓒ 백세준


2024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분석'를 살펴보면, 피해규모가 2022년 1451억에서 2023년 1965억으로 514억이나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스팸 유통현황'을 보면, 스팸 신고 및 탐지 건을 분석한 결과 총 2억 651만 건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한국은 그야말로 '스팸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하다.

정부(지자체)를 비롯해 은행, 복지관 등 다양한 주체들이 노인과 어르신들이 보이스피싱과 스미싱에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홍보와 대응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AI기술이 접목되면서, 가족이나 지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이런 기술 악용으로 금방 구현해낼 수 있어 이를 활용한 범죄들이 활개치고 있단다. 그러니 단순 교육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끊이지도 않을 문제이다. 범죄 주체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도 없고, 이들은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빠르게 잡아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도움 요청과 행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르신을 비롯해 전화나 메시지가 무언가 의심스러울 때는 주위사람에게 바로 물어봐야 한다. 피해를 주는 것 같다며 뭔가 물어보는 것을 대부분의 어르신이 꺼려하곤 한다. 하지만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듯이, 타인이 도움을 요청할 땐 돕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어쩌면 다양한 어려움 앞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도와달라는 요청도 중요하지만, 도움 요청을 받은 사람이 내 일처럼 적극적으로 돕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하면 경찰 등 신고 기관에도 알리는 것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스팸도 기술을 악용해 발전하는 사회, 더이상 '누가 봐도' 스팸문자처럼 보이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게재됩니다.
#스팸문자 #보이스피싱 #스미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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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축구를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지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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