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오후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
연합뉴스
한편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정말로 반도체 산업경쟁력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용인 일대로 계획된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전력 공급 대책이다.
반도체는 제조공정상 엄청난 전력소비를 요구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할수록 소비량 증가는 더욱 가팔라진다. 현 수도권 설비용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15~20기가와트(GW)가 필요하다는 추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산업부는 우선 급한 대로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를 산단 내에 건설해서 3기가와트를 해결하고, 나머지는 추후 밖에서 끌어온다고 한다. 대번에 의문이 나온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은?
RE100은 비영리 환경단체의 캠페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연성적인 국제규범으로 공급망을 압박하고 있다. 거래기업들과 글로벌 소비자, 투자운용사들이 RE100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시대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모두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반도체 공장도 재생에너지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답변은 화석연료인 LNG이고, 나중에 송전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8% 남짓으로 OECD 최하위를 다툰다. 지난 5월 공개된 산업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38년에 이르러서도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32.9%에 머문다. 수도권이라는 입지는 문제 해결을 더욱 까다롭게 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마지막 연도인 2036년 기준 수도권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1.5%로 전국권 45.3%에 비해 4분의 1수준이다.
2036년 계획에서 전체 수도권 신재생에너지 정격용량이 7.8기가와트이니 전력 전부를 모두 반도체 팹에다가 공급해도 필요전력을 채울 수 없다. 반도체 공장이 24시간 고압전력 공급을 요구한다는 특성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송전 역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근본적으로 더 이상 과거처럼 지역 주민들의 입장과 자연 훼손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송전탑을 짓고 고압 송전선로를 깔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공기는 몇 년씩 늘어지고 비용은 비례해 폭증한다. 불확실한데 비싸다.
34.2km에 불과한 북당진-고덕 송전로만 하더라도 예정보다 12년 늦게 준공되면서 1조 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됐다. 게다가 현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에너지 가격을 통제해 한국전력에 200조 원을 넘나드는 적자를 쌓아두면서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는 구조적으로 대규모 송배전 투자가 가능할 수가 없다. 재생에너지의 양도 부족한데 송전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 발전을 포함하는 CF100이니셔티브(Carbon Free 100, 무탄소연합)로 RE100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마저도 이것이 RE100의 대안이라고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RE100이 대세인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반도체 기업들은 더더욱 논외다. 국가가 주도한다고 해서 국제규범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 데다,
전 세계 에너지 설비투자 규모에서도 원전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대단히 미미하다(IEA, 2024). 글로벌 트렌드로 확대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뜻이다. 수반되는 폐기물 문제와 막대한 송전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에너지 전환을 통해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원활히 공급하는 국가 전략이 먼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부 계획으로는 산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근본 전제부터 의문스러운 상태다. 여기에 재정을 쓰지 않고 엉뚱하게 보조금과 세액공제로 기업에 돈부터 줄 궁리를 하는 것은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반도체의 전략적 성격은, 그것이 지속가능한 공급망 속에서 용납되는 물건이라는 전제를 충족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