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시내에서 현지 주민들이 러시아의 로켓 공격에 파괴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최소 8명의 주민이 부상했다. 2024.08.07
연합뉴스
얼핏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도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들어맞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정교 국가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분쟁이었으니 냉전 체제 붕괴 후 각 문명권이 대립한다는 헌팅턴의 이론은 맞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이 어느 시기에 발생했건 두 문명 간의 충돌이니 헌팅턴의 이론이 맞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헌팅턴의 전제는 냉전 체제와 서구의 몰락 이후 도래하는 세계 각 지역 문명의 충돌이다. 즉, 서구의 보편주의가 무너지면서 세계의 문명들이 충돌한다는 것인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서구의 보편주의가 쇠락하기는커녕 절정으로 치닫기 이전에 시작된 분쟁이다.
중동전쟁일까? 중서 전쟁일까?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는 발간 당시에 각 민족 간의 분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책이지만, 2024년에 재독해 보면 틀린 부분이 적잖이 눈에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이론의 핵심 문제는 서구인들의 시각, 좀 더 정확히는 미국인의 시각으로 냉전 체제와 서구의 쇠퇴를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이른바 에드워드 사이드가 논했던 오리엔탈리즘이 그의 머릿속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문명 또는 문화의 충돌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속해서 반복 되어왔다. 그리고 2024년 현재 시점에서 역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큰 문명의 충돌은 1990년대 이후가 아니라, 서구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점령했을 때 일어났다.
그런데, 헌팅턴은 근대의 시발점이 되었던 이러한 충돌을 서구가 타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충돌로 막대한 득을 보았음으로 엄청난 충돌로 인식하지 않고 1990년대 동아시아 및 기타 문명 국가들이 성장세를 보이자, 이를 서구의 쇠퇴 그리고 문명의 충돌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의 주장이 서구를 헐뜯는 옥시덴탈리즘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극동아시아인인 필자로서는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이나 매한가지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일찍이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1978)으로 전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국내외 학자들이 사이드를 인용하고 있지만, 서구적 시각의 한계를 지적한 사이드도 역시 그가 아랍인으로서 가지는 시야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이드는 서구인들이 비서구인들의 문명을 오리엔탈리즘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전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문제는 사이드 자신도 아랍 문명, 인도 문명, 동아시아 문명, 그 밖의 모든 문명을 오리엔탈리즘으로 묶고 있다. 그러나, 극동아시아인은 물론, 인도인, 동남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아랍 문명은 동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쪽에 있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서 보면 서구 문명이나 아랍 문명은 동쪽에 있다.
근대가 오기 전 그러니까 조선시대 이전에 서쪽에서 외국인이 왔다면, 그가 아랍에서 왔든, 이스라엘에서 왔든, 인도에서 왔든, 네덜란드에서 왔든, 러시아에서 왔든, 그는 우리 민족의 눈에는 다 같은 색목인, 서역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동문제라 하는데 우리의 지리적 위치에서 바라보면 아랍은 우리나라에서 중서(中西) 쪽에 있고 유럽은 극서(極西) 쪽에 위치한다. 역사와 반대로 우리가 서역을 식민지 경영했다면, 당연히 우리는 아랍인을 중서인, 유럽인을 극서인으로 불렀을지 모른다.
우리가 중동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이러한 '서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현 사태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이 두 분쟁은 인도를 제외한 '서역' 내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전쟁의 일환이다. 둘째, 서구는 자신들의 팽창기를 근대라고 칭하였는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한반도의 분단만큼이나 서구가 주축이었던 근대가 만들어낸 실책이었다. 셋째, 아랍과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서로 가장 가까운 인접 문명이라는 것이다. 헌팅턴이 지적하듯 둘 다 유일신과 성경과 예루살렘을 중시하고 그 외에도 많은 문화적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덕분에 전 세계 문명사에서 유일신 종교가 흔하다고 한국인은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두 종교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같은 지역의 사막에서 발생한 유사성이 높은 종교들이다. 그리고, 서로 굉장히 다른 것처럼 주장하지만 유럽과 모스크바 중심의 러시아 문명도 인접 문명으로 근대 이전부터 서구사 내지 '서역'사를 함께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