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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전생에 내 아들"이라고 한 작가

청주시립미술관 본관 1, 2층에서 <청주 가는 길: 강익중> 전, 9월 29일까지

등록 2024.09.02 08:49수정 2024.09.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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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익중 I '무심천' 청주시 흐르는 '무심천' 형상화 2024

강익중 I '무심천' 청주시 흐르는 '무심천' 형상화 2024 ⓒ 김형순


청주시립미술관(관장 이상봉) 1-2층에서 '청주 가는 길: 강익중' 전이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설치,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 60점을 선보인다. 그는 소통과 화합, 조화와 연대 등 주제로 '남과 북', '동과 서', '인간과 자연'을 잇는 예술가 역할을 해왔다.

강익중은 그의 작품이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대영박물관, LA 현대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독일 루드비히뮤지엄, 삼성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될 정도로 세계적이다. 강익중은 홍익대 회화과와 뉴욕 '플랫'미대(석사)를 졸업했다.


강익중 시 중 '자기소개서'
이름은 강익중 / 호는 '그냥'입니다 / 장안으로 지었다가 굳었습니다 / 떡 라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 물론 신당동 떡볶이고요 / […] / 취미는 걷기 / 온종일 걸을 수 있습니다 / […] / 고향은 청주 / 하루에 열두 번쯤 생각합니다 / '무심천'과 '우암산' 때문입니다 / 사는 곳은 뉴욕 / 하지만 갈 길은 떠나온 곳입니다 / 저 맑은 곳
통합 청주시 출범 10주년을 맞아 40년간 국제적 명성을 쌓아온 강익중 작가의 대표작을 고향에서 선보여 그 의미가 더 크다. 1층은 10m의 작업 '내가 아는 것'으로 온통 벽면을 가득 채웠다. 2층은 작가가 꾸준히 온 연작들 '해피월드', '삼라만상', '달항아리', '1,000개 드로잉' 등을 선보였다.

대부분 작가가 그렇지만, 그에게도 고향은 창작의 원류가 된다. 도시 남북으로 흐르는 '무심천'과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은 음양의 흐름을 잡아냈다. 산과 개천이 그에게는 부모나 다름없다. 위 작품도 무심천 등 고향의 산천을 재해석한 것이다.

내가 처음 본 청주 산천은 맑았다. 근데 작가의 고향은 세계 문명사를 빛낸 획기적인 도시다. '출판'에 있어 새천년을 연 '금속활자'가 발명된 곳이다. 또 강익중은 처음부터 한글로 작업해왔다. 최근 한 하버드 교수는 20년 후 남을 언어는 '한글'밖에 없다고 했는데,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언어'에 있어 새천년을 연 셈이다. 인터뷰에서 "K-글 즉 철학적 한글은 모든 K-컬처의 근간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게다가 그의 멘토였던 백남준은 60년대 뉴욕 벨 연구소 다니면서 11년간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리포트를 썼다. 그 중 1974년에는 '전자초고속도로(인터넷)' 아이디어를 발표했고 이로 록펠러 기금도 받았다. 이 역시 '정보'에 있어 새천년을 연 사건이다. 이번 청주전을 이렇게 금속활자+한글+인터넷을 엮으면 삼천 년 문명이 나온다.

작가 얼굴은 맑은 청주시


a  강익중 I '내가 아는 것' '그리운 내고향' 2024

강익중 I '내가 아는 것' '그리운 내고향' 2024 ⓒ 김형순


강익중은 표정이 아이처럼 맑다. '설렘' 같은 단어를 좋아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 밥에 최고 반찬은 '씀바귀무침'이라고 읊었는데 식성도 한국적이다. 이번에도 그는 시집 <고향이 워디여>를 냈다. 선시처럼 꾸밈없고 소박하다. 그는 '반가사유상'을 좋아하는데 그 자신의 자화상인 양 꾸준히 '삼라만상' 시리즈에 담아왔다.

'광화문 아리랑' 작업에 그의 2천여 편 시가 들어갔다. 앞으로 1만 편의 시를 더 쓰고 싶단다. 삶과 시가 일치하는 그의 스타일은 그의 예술을 더 깊게 할 것이다.


그는 초인적으로 부지런한 작가다. 90년대와 2천년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익중은 1초도 손에서 작업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리는 건 실존의 문제다. 유학 시절부터 학교와 아르바이트 가는 중, 뉴욕 지하철 안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12시간씩 '3×3인치' 미니 캔버스로 작업했다. 이건 작업에서 점선면 역할을 한다.

a   강익중-백남준 I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 2009

강익중-백남준 I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 2009 ⓒ 김형순

a   강익중 I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 2009

강익중 I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 2009 ⓒ 김형순


데뷔 10년 후인 1994년 운좋게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멀티플/다이얼로그'을 열었다. 1997년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특별상도 받았다. 그 후 활동 범위를 넓혔다. 2001년 UN에서 '놀라운 세상', 2005년 루이빌 'M. 알리센터'에서 141개국 어린이들이 보내온 5,000여점으로 만든 설치물도 선보였다.

2007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세계 젊은이 가치를 예찬하는 '청춘'을 발표했다. 그해 12월부터는 14색 단청으로 광화문 복원공사를 위한 가림막 작업에 착수했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백남준 오마주전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전(위)을 열었다. 제2의 '백남준-강익중 휘트니 2인전'인 셈이다. 백남준이 강익중에게 서울에서 다시 2인전 열자고 제안했단다. 그러나 백남준 먼저 돌아가셨다.

강익중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의 전자빛을 포근히 품고 램프 코어를 뺀 둘러가면서 삼라만상을 형상화했다.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전자산수화를 보는 듯 묘하다. 그 속에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장엄미를 연출했다. 거기에 음향아트도 더해졌다.

그리고 2016년 9월 한 달 동안 작업으로 런던 템스강에 '집으로 가는 길(Floating Dreams)'을 전시했다. 한국의 실향민과 세계 난민을 위한 작품이었다. ' 작가 자신도 이민자라 그런지 무의식 속에는 떠돌이(디아스포라) 정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a  강익중 I '꿈의 다리' 그리운 내 고향 2016

강익중 I '꿈의 다리' 그리운 내 고향 2016 ⓒ 김형순


위 작품은 2016년 런던 '템스강 연작'의 한반도 버전이다. 작가가 그린 것이 아니고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500명이 애틋하게 가족을 그리며 직접 만든 그림을 작은 액자로 제작한 것이다. 실향민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고, 그냥 '참여 미술'이 된다.

그는 더 나아가 한중일도 다 한 뿌리이기에 바람으로 통하고 섞이고 땅을 통해 모두 이어진다고 봤다. 그와 함께 식민과 분단의 산물인 '위안부' 문제나 '남북냉전' 문제는 그의 단골 메뉴이다. 이를 우리가 꼭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로 삼았다.

그 밖에도 아래 사이트에 가면 2017년 국립현대에서 발표한 '삼라만상',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 '광화문 아리랑' 등도 볼 수 있다. https://ikjoongkang.com/images/

달항아리, 또 다른 의미

a  강익중 I '달항아리' 시리즈 2024

강익중 I '달항아리' 시리즈 2024 ⓒ 김형순


그는 무엇보다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동과 서, 남한과 북한은 다 똑같다고 봤다. 백남준처럼 남북 경계 없이 동서의 장벽을 넘어 하나가 되는 세계를 추구했다. 지구촌 식구들이 하나로 모아 축제를 조각한다고 할까.

2004년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에 작업하다 대형풍선에 바람이 빠져 상심 중 다시 보니 거기 우리에게 친숙한 일그러진 항아리를 발견하고 이 시리즈를 시작했단다.

이번에도 '달항아리'를 발표했는데 그냥 항아리가 아니다. 남북 통일을 상징하는 매개인 셈이다. 도자기는 속성상 아래위를 붙여야 한다. 남북도 마찬가지다. 여기선 북을 청색, 남을 적색으로 표현했다. 반대로 해도 문제는 없다. 남북 갈등은 결국 외세의 장난이니 우리끼리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a  강익중 I ''꿈의 다리' 1985-2024 여길 걷다 보면 남북의 구분이 없어진다

강익중 I ''꿈의 다리' 1985-2024 여길 걷다 보면 남북의 구분이 없어진다 ⓒ 김형순


또 "인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전문가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는 정직과 성실을 중시하는 생활 철학자, 물론 작가에게는 여기에 창의성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40년간(1984~2024) '꿈의 다리'를 설치해왔다. 강익중은 아이들이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꿈의 다리에 보이는 순환적 원형 테두리를 돌다 보면 남북의 구분이 없어진단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와 대화 시간

a  강익중 전시 투어 후 작가와 인터뷰 시간

강익중 전시 투어 후 작가와 인터뷰 시간 ⓒ 김형순


전시 투어 후 작가와 대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백남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에게 백남준은 너무나 큰 영혼과 감동의 원천이기 때문이리라.

200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2인전 할 때다. 당시 뒤셀도르프에 있던 백남준은 휘트니미술관 관장에게 "난 괜찮으니 강익중에게 좋은 자리를 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라는 팩스를 보냈다. 세상에 후배를 이렇게 배려하는 작가가 그리 흔한가. "전생에 내 아들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백남준은 그에게 "예술가란 외줄을 타고 왼쪽 장대로는 과거 천년을 돌아보고 오른쪽 장대로는 미래 천년을 내다보면서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고 또 30세기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물었단다. 강익중은 그래서 백남준은 "우주적 농담자로 낮에도 별을 보는 무당이고, 30세기를 떠도는 천재 여행자"라고 생각했단다.
덧붙이는 글 한국미술가 최초로 강익중 작가 이집트 피라미드앞에서 대형 설치 작품 전시(Forever is Now)가 2024년 10~11월에 이집트 정부·유네스코 후원으로 열린다 // 강익중 홈 페이지 http://www.ikjoongkang.com/
#강익중 #청주시립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백남준 #3인치페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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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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