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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잡고 뒹군 아들... 응급실 돌아보니 '공포'네요

응급실마다 환자로 가득... 의료계 정상화, 시급합니다

등록 2024.08.21 14:36수정 2024.08.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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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병원pixabay

평온한 주말이었다. 적어도 아들이 배를 잡고 뒹굴기 전까지는. 스무 살이 넘는 청년이다. 다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일상생활을 한 뒤라 갑자기 배가 아프다란 말을 가볍게 여겼었다.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식은 땀과 고열에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몸부림을 보였다. 부랴부랴 가까운 대형병원을 찾았다.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배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걸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담당자들이 보았을 때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일단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니 10분 거리의 2차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복도에 즐비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니 이번 주말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공포감이 들었다. 우리를 대하는 간호사의 표정은 더했다.

"보시다시피 지금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을 볼 수 있는 의료진이 부족합니다. 한 4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게 나아요."

조금 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던 자녀는 고통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 배를 움켜 잡았다.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상황은 심각해졌다. 119에 전화해 다른 응급실이 있는지 문의했다. 그 짧은 몇 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렇게 찾아간 응급실은 저마다 살려 달라는 사람들이 많았고, 의료진은 의료진대로 긴장과 기진맥진 사이를 오가는 듯했다. 여태 살아오면서 응급실을 여러 번 다녀보았지만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겼을 때 아들은 병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후에 아들은 " 눈이 뒤집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요즘은 아프면 큰일', 그 말을 실감했다

우려되는 것은 전날 먹었던 조개였다. 팔팔 끓이기도 했고 온 가족이 다 먹었지만 비브리오패혈증의 치사율이 30프로가 넘는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일반 장염이면 차라리 나아요. 게실염이나 담낭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단 CT를 찍어봐야죠."

의료진의 말이었다. 평소 아들에게 무뚝뚝한 남편이나 내일 모레가 시험인 딸도 가족의 위급 상황 앞에서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세 곳의 병원을 돌면서 며칠 전 기사로 본 '응급실 뺑뺑이' 기사 내용이 떠올랐다. '요즘은 아프면 큰일이구나'란 생각이었는데 비슷한 일을 겪고 보니, 위기감이 아닌 공포 그 자체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급성장염 정도의 진단을 받아 새벽에 귀가할 수 있었다. 몇 시간 치료에 18만 원이란 비용을 부담했지만 그보다 더한 게 아니니 감사할 이유가 넘쳤다.

몇 시간 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자녀를 보는 와중에 '이제는 살았다'란 안도감 뒤로 조금 전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던 게 떠올랐다. 세 곳의 병원 정도면 나은 것일까? 이게 만약 일반장염이 아닌 더 심각한 상황이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상상할 수도 없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온 환자가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기침하는 고령의 환자, 의식 없이 들어 온 환자. 그사이를 바삐 오가는 의료진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들... 이게 과연 k-의료관광을 한다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실인가 싶었다.

가벼운 질병에도 이런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지난 2월 시작된 전공의 파업의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환자지만 의료진, 병원, 정부도 모두 중상을 입었다. 의료 인력의 공정한 분배이 필요하다. 전공의 파업은 문제만 속출되고 있을 뿐, 해결책은 요원하다.

아픈 가족을 뺑뺑이 시켜보니 이제야 이 사태의 심각성이 뼈저리게 와 닿는다. 그다지 중하지 않은 가벼운 질병에도 이렇게 호들갑스러운데 삶과 죽음, 1초가 다급한 환자들에게는 2월부터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암담했을지 가늠키가 어렵다.

다음 주면 코로나 환자가 8월 말부터 35만 명을 넘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약은 물론이고 입원도, 고쳐줄 의료진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때 아프면 큰일 난다"란 위기감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든다. 개인적인 대비만이 해결책인지 의문스럽다. 결자해지의 시간이라고 본다.
#의료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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