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늘 노동 중인 한국에서 아이들은 그 공백을 스마트폰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놀 친구도 없고 집에 가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차라리 안식처일 수 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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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료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다. 수업 시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나왔단다.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제 발이 뭐예요?
이 아이는 '제 발'과 '제발'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은 알지만 '제 발'은 모르는 탓이니, 단음과 장음(제〜발)으로 설명해서 이해될 일이 아니었다. 사전적 의미를 설명해도 아이는 갸우뚱한 표정이었는데, 결국 영어로 이건 'please' 뜻이 아니라 'my foot'이란다 설명하니, 그제야 아이는 언더스탠드(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식하다는 뜻의 속담으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또 다른 선생님의 경험에 의하면, 이 속담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기역 자 놓고 낫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기역'은 알아도 '낫'을 모른다. '이건 말이야, 시골에서 풀을 베거나 벼나 보리를 베던 농기구야' 설명해본들, 낫을 본 적도 직접 해본 적도 없으니 알아듣지 못한다.
갈수록 황순원의 <소나기>를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국어선생님의 하소연도 있었다. 소설을 보면 소년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소녀가 소년에게 "이 바보"라며 조약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아름답고 감동적 장면이었다는 것은 어른들 생각이다. 요즘 교실에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다짜고짜 왜 욕을 하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욕도 기분 나쁜데 돌까지 던지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이쯤이면 싸우자는 것이냐? 되레 물어본다.
<도둑맞은 집중력> 목차를 보면, 4장의 제목이 '소설의 수난시대'이다. 집중력을 도둑맞은 요즘 아이들이 긴 텍스트(특히 소설)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긴 텍스트를 읽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미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7분이고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시간은 5.4시간이었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복잡한 소설이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네 망엔은 노르웨이 한 대학에서 문해력을 연구하는 교수로, 20년 간 이 주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독서는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반면 휴대폰 화면 읽기 방식은 정신 없이 넘기면서 초점을 옮기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액정 화면에서 글을 읽을 때 대충 훑어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는 식으로 읽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읽기는 더 이상 다른 세상에의 즐거운 침잠이 아니라, 붐비는 슈퍼마켓 안에서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잡아채서 빠져나가는 행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소설은 우리를 다른 삶으로 초대하고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소설은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다. 책의 주장처럼, 스마트폰은 소설은 상극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은 소설(긴 글)을 멀리하게 만드는데, 소설과 멀어지면 어휘력뿐만 아니라 공감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게 우리의 감각과 능력을 하나씩 도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개인적 해결책이 '잔혹한 낙관주의'로, 미봉책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면,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저자는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운동으로 먼저 '감시 자본주의'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주4일제를 도입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덜 일하고 더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답일지 모른다.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은이), 김하현 (옮긴이),
어크로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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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게 무엇을 먹일까 하는 토론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소를 굶겨 죽였습니다. 백의 이론보다 천의 웅변보다 만의 회의보다 풀 한 짐 베어다가 소에게 죽을 쑤어준 사람 누구입니까?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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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놓고 기역'의 '낫' 모르는 아이들, 스마트폰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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