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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만 갈 수 있던 비상구... 아리셀 참사의 충격적 진실

아리셀 참사 이후 70일,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나 ③

등록 2024.09.06 11:39수정 2024.09.0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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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박순관 대표이사 구속수사 촉구 서명운동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 주최로 지난 8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살인자 박순관 구속수사 촉구 범시민 서명운동 개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이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조속한 해결과 박순관 대표이사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박순관 대표이사 구속수사 촉구 서명운동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 주최로 지난 8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살인자 박순관 구속수사 촉구 범시민 서명운동 개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이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조속한 해결과 박순관 대표이사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이정민


지난 8월 23일, 아리셀 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60여 일 만에 경기남부경찰청 및 고용노동부의 수사결과 합동브리핑이 열렸다. 아리셀 참사 당시 현장에서 전지의 분리막이 손상되었거나 전해액이 누액되는 등의 이유로 내부와 외부 단락(단락: 쇼트. 전기적인 경로가 비정상적으로 접촉되거나 연결되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 단락이 확대되어 화재와 폭발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아리셀이 납기 일정에 쫓긴 탓에 불량률이 늘어났고, 발열전지를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리핑에 따르면, 군납 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지체상금이 발생한 아리셀 측은 6월 중에만 60여 명의 추가 인력을 일시적으로 투입해 일정에 맞춰 제품 생산을 하려고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또 화재와 폭발로 인해 인명 피해가 생긴 원인은 비상구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노동자들이 사고발생 시 대피 요령에 대한 교육을 받은 바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공장 내 비상구는 화재발생 장소에서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도달하는데, 정규직만 열 수 있는 보안장치가 달려있었다고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리셀은 6월 한 달 동안만 120여 명의 인력을 일시적으로 투입해서 공장을 가동하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당연히, 비정규직이다. 이처럼 수사결과에서는 불법 파견, 간접고용 및 외주화의 위험이 그대로 드러났다(관련 기사 : 아리셀 화재, '비상구' 길목에 정규직만 여는 문 있었다).

이주노동자와 불법 파견

이주노동자들의 불법파견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에서 일자리 알선 업무를 하고 있지만, 알선되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원하는 직종을 고를 수 없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사설 일자리 알선업체를 찾는다. 특히 F-4(재외동포), H-2(방문취업), F-6(결혼이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적인 일자리 알선을 받을 수 없는 난민신청자, 유학생,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사설 알선업체를 이용한다.

문제는 알선받은 일자리의 대부분이 불안정노동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제조업으로 파견하게 되는데, 제조업에서는 파견법에 따라 상시적으로 파견근로자를 공급받을 수 없다. 결국 3개월짜리 단기 근로계약을 맺게 된다. 혹은 노동자가 소속되어 있는 파견업체가 주기적으로 폐업을 했다가 다시 개업을 하는 식으로 노동자의 소속을 바꾼다.


근로자파견업 혹은 근로자공급사업으로 허가를 받은 업체가 일자리를 알선한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다. 그러한 허가조차 받지 않고 파견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리셀의 경우에도 그랬다. 노동자들을 아리셀로 파견한 것으로 알려진 ㈜메이셀은 파견업이나 근로자공급업으로 허가받은 업체가 아니다. 파견법 및 직업안정법 위반이 판을 친다. 그 관계 속에서 원청은 필요한 인력을 공급받고, 불법적인 파견업체들은 중간에서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이익을 쌓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만의 몫이다.

불법파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피해는 다층적이다. 우선, 아리셀 참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안전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자신이 현재 투입되어 일하는 공정에 대한 정보를 알 길이 없다. 주로 단기로 노동자를 내보내는 파견업체도, 단기로 노동자를 '쓰는' 업체도 제대로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


내국인도 그럴진대 한국어로 소통이 어려운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인지하여야 할 문서인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형식적인 교육을 하는 업체도 있지만, 한국어로 할 뿐이다. 더 나아가 외국어로 적힌 자료를 주는 업체도 있지만, 그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해당 이주노동자의 모국어로 적힌 자료가 아닐 경우도 있다.

결국 이들은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화학물질을 다루면서 어떠한 주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일만 할 수밖에 없다. 위기상황이 닥치면 대처할 수가 없다. 아리셀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불법적으로 파견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화재 발생 시 대피해야 할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최근 5년 동안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자는 매년 평균 101명에 달하며, 이는 전체 사망자 중 12.3%를 차지한다. 산재 사망자 10명 중 1명 이상이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2023년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226만 명으로 총인구 대비 4.4%다. 2021년 한 해 동안 이주노동자의 사망만인율은 1.19로, 이는 전체 사망만인율 0.43보다 약 2.8배 높은 수치였다. 그야말로 '위험의 이주화'다.

불안정 노동의 악순환

다음으로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있다. 특히 불법파견의 경우 퇴직금을 수령하기가 어렵다. 1년 이상의 근속이 담보되지 못한다. 2년 근속의 경우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단기 근로계약을 맺고 용역업체가 폐업을 반복하는 것은 퇴직금 지급의무를 회피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계속적 거래관계가 있는 사용업체(원청)는 파견업체와의 관계 때문에 정규직화를 꺼린다. 정규직화하면 파견업체에서 해당 노동자를 대상으로 더 이상 수수료를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 필요인력 발생 시 해당 파견업체에서 인력을 공급받아야 하는 사용업체 입장에서는 파견업체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결국 불법파견 노동자는 만성적인 저임금에 더해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등 불안정노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더욱 불안정한 지위에 놓인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장소 이외에서 근무할 수가 없다. 다만, 일정한 조건에서 사업장 변경신고를 통해야만 파견근무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근무처 변경 및 추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하게 되면 이주노동자는 출입국관리법에 의거하여 강제퇴거 대상이 될 수 있고, 사용자는 외국인고용법에 의거하여 외국인 고용제한을 받게 된다.

실제로 불법파견 단속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보호조치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파견 나가 일 했을 뿐인데, 근로계약에 명시된 장소 외에서 근무를 했다는 이유로 보호소에 갇힐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용자에 의한 불법파견임이 밝혀지면 대부분 보호 해제되지만, 보호소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 자체가 곧 불법파견이라는 근로조건이 이주노동자에게 매우 불안정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또한 불법파견은 차별을 고착화한다. 우리 사회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사회적 신분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을 말한다. 기간제, 단시간, 파견노동자의 경우 차별시정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별시정제도가 도입된 지 17년이 지났는데, 전국 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되는 시정요구 건수는 연 평균 130여 건에 불과하다. 비교대상이 되는 정규직과의 업무의 동종·유사성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차별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 신청이 저조한 이유인데,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차별시정을 청구했다가 회사로부터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서다. 그렇지 않아도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괜히 차별시정을 신청했다가 무기직 전환이 되지 않을까 봐, 혹은 기간제 근로계약이 갱신되지 않을까 봐, 더 나아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해고될까 봐 참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차별은 고착화된다.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차별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에 더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차별이 더해진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임금이 줄어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게 되고, 장시간 일하게 되고 심지어 상시적인 폭언에 시달리기도 한다.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성희롱 등 심각한 성차별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정부가 책임자다

이처럼 불법파견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함에도 처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불법파견 또는 위장도급으로 인정되는 경우 파견법에 의거,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 모두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기소된 사건 중 실형을 받은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수천만 원의 벌금형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그마저도 거의 적발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불법적인 파견에 내몰리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고의적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한술 더 떠 아리셀 참사를 기회로 파견 규제를 완화하자고 한다. 위험의 외주화, 이주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부는 반성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다. ㈜아리셀의 대표를 구속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불법적인 파견의 행태에 대하여 전수조사에 착수해야 하고, 확실하게 처벌하여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차별받지 않도록 위험이 외주화되고 또 이주화되는 죽음의 행진을 막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조영신 님은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운영위원, 법무법인 원곡 대표변호사입니다.
#아리셀 #위험의이주화 #위험의외주화 #불법파견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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