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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타 드로잉', 현수막 보다가 한숨 나온 사연

'굿모닝' 뜻 묻는 엄마... 남녀노소, 모두의 알 권리를 위해 쉬운 우리말 사용하기

등록 2024.09.06 16:39수정 2024.09.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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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앙로 시내 한복판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이 무비스타 드로잉 콘테스트'.

뜯어보면 모든 문장이 외국어다. 보통은 특정 단어만 외국어를 쓰는데 특이하게도 저 현수막은 모든 문장이 외국어로 구성되어있다. 저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저 문장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라는 뜻일까.

지금 내가 탄 버스에 앉아있는 사람들 평균연령 60~70대. 현재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평균 연령 오십 대 이상. 나도 모르게 현수막 문장을 한국말로 옮겨본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배우 그리기 대회' 쯤 되겠다.

이해가 쉬운 우리말 두고 왜 외국어로 무장한 걸까. 버스가 지나도록 눈에 띄는 그 현수막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a  이해가 쉬운 우리말 두고 왜 외국어, 영어로 무장하는 걸까(자료사진).

이해가 쉬운 우리말 두고 왜 외국어, 영어로 무장하는 걸까(자료사진). ⓒ sigmund on Unsplash


내가 외국어 현수막에 관심이 간 이유는 지난번 국어문화원연합회라는 곳에서 전자 우편을 받았기 때문인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본문에서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가령 <키워드>라는 단어를 <핵심어>로 표기해 달라는 당부였는데 처음 받았을 땐 별 신경 없이 넘겼다. 그러나 두 번째 편지를 연속받았을 때는 좀 더 세심히 읽어 보았다. 기사 작성 시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 국민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그들의 취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사용한 외국어 '키워드'는 '국민 이해도 조사'에서 국민 이해도가 평균 40% 이하인 낱말이며, 특히 70대 이상에서는 평균 10% 정도, 즉 10명 중 한 명만 이해하는 어려운 외국어이자 외국문자라는 설명이다.


이걸 우리말로 바꿔 쓴다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국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정중한 문서였다.

그런 전자 문서를 몇 번 받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문장을 볼 때 외국어가 사용됐는지 찾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일상생활이나 기사 작성 시 가능한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정체 모를 영어간판, 외국어 닉네임 호칭... 이게 최선일까요

하지만 주위 생활권을 둘러보면 어떤가. 뜻도 모르는 외국어가 난무한다. 회사 근처 어떤 간판은 이름만 가지고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어 동료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중고 거래 마켓 동네 생활 게시판에 보면 정체 모를 간판 이름을 올리며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알려달라고 질문을 남긴 사람도 있다.

외국어를 간판으로 사용할 땐 한국어 설명을 그 옆에 같이 표기해야 하지만, 그걸 지키는 가게 주인은 별로 없는 듯하다. 정체를 숨기는 게 마케팅 효과가 있다고 보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불분명한 외국어는 외면 받기가 더 쉬운데 말이다.

최근 어떤 회사는 직원들 간에 외국어 닉네임을 정해 호칭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수직관계의 상하 문화를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는데, 작년에 내가 글을 기고했던 스타트업 플랫폼의 직원들도 토종 한국인임에도 모두 제이드 같은 영어닉을 만들어 사용했다.

왜 영어 이름을 쓰냐고 궁금해 물었더니, 회사 분위기 전환용이라고 상대 측은 설명했다. 한국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직원들을 보며 어색하고 낯설어서 고개가 갸웃 거려지기도 했다.

한류 가수들은 또 어떤가. 방탄소년단을 제외하면 르세라핌, 제로베이스원 같은, 뜻도 어려운 외국어 이름이 대부분이다. 동그라미, 유심초, 산울림, 높은 음자리 같은 우리말 가수 이름을 쓰는 신인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더 이상 보기가 어렵다.

한류 문화를 자리 잡는 상징적 용어 K-POP, K-Food, 심지어 K-장녀까지 유행처럼 사용된다. K-장녀라니. 장녀도 수출용 한류인가. 그냥 장녀라고 사용하면 시대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일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a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자료사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자료사진). ⓒ atluminon on Unsplash


방송 연예 기사를 볼 때도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볼 때면 뜻을 몰라 검색기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내가 사용하는 '키워드' 같은 외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물어온 적이 있다.

"얘야 굿모닝이 무슨 뜻이냐?"
"엄마, 굿모닝은 갑자기 왜요? "
"어, 요즘 매일 아침마다 어떤 분이 지나가면서 나한테 굿모닝, 굿모닝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 줄 모르겠어."

그 말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치원생도 다 아는 줄 알았던 굿모닝인데 엄마에겐 어려운 문장인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굿모닝은 영어고 좋은 아침이라는 뜻으로 아침 인사말이 영어로 '굿모닝'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말로는 안녕하세요 같은 거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제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굿모닝과 안녕하세요의 거리감이 영어와 한국어만큼이나 다른 정서적 전달이었을까. 엄마는 "굿모닝, 굿모닝" 연속 발음을 하며 감정을 느끼려는 듯 표정을 갸웃거렸다.

요즘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 교과목을 배우고,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는 잘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으니 영어를 아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나는 한국사람이고 한국에서만 살 건데 내가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옳고 그름은 없지만 분명한 건 최소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생활이나 글에서 만큼은 외국어 보다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활용가치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외국어 대신 사용할 우리말을 찾는 재미도 있고 생각보다 예쁜 우리말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리 낭자 삼겹살 도령'까진 아니어도, 내가 아는 '온봄달'이란 샌드위치 가게 이름은 예쁘다. '온봄달'은 3월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지금도 가게 '홈페이지'라고 쓰려다 멈칫, 이번엔 예쁜 우리말인 '누리집'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누리집이 뭐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쉬운 말이 오히려 쉽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누리집이 뭐야?라고 묻지만 차츰 하나씩 우리말을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 한류의 중심에 우리말 한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한다. 그때 한류를 주도하는 건 아마 'K-한글' 이기보다는 순수 한국어로서의 한글, 순우리말을 쓰는 한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말 #한글 #순우리말 #외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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