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이라는건 말야 씹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야 하는거라고.
유신준
내게는 더위를 이기는 남다른 능력이 하나 있긴하다. 정원 손질이 무진장 재미있다는 거다. 언젠가 이 일이 심드렁해지는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바리깡만 들면 엉덩이가 가벼워진다.
마누라 집 나간 지 삼년된 홀아비 얼굴에 돋은 수염처럼, 울쑥불쑥 무성했던 나무들이 바리깡 한번 쓱 지나갔다하면 말쑥하게 달라지는 거다. 시집온 첫 동짓날 새색씨가 빚어놓은 새알심처럼 단정해지는 거다. 세상에 이보다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나?
미드 그레이스 아나토미에 나치라는 별명의 혹독한 닥터 베일리가 등장한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인턴 시절에는 수술이 무진장 하고 싶어서 수술에만 참가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하려는 무서운 욕망이 있었다. 처음 메스를 손에 들었을 때 하늘을 날 듯이 기뻤다. 지금 나는 어떤가. 거의 모든 수술에 머리를 쓰지 않게 됐다. 마치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처럼 습관이 돼 버렸다.' 그런 거다. 의사든 정원사든 세상 이치는 마찬가지다. 뭐든 처음 시절 간절함이 진짜 배기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금방 점심시간이다. 점심식사는 작업의 즐거움 중 하나다. 요즘 이곳에서는 마루가메 제면이라는 우동집에 자주 간다. 할배는 면이 딱딱하다고 불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이니 그곳으로 핸들을 돌린다. 감사하다. 가면서 차 안에서 할배가 한 마디 한다. 우동이라는 건 말야 씹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야 하는 거라고. 나도 지지 않는다. 나는 씹을 게 없으면 먹는 것 같지 않다니까요.
생긴지 얼마 안 되는 우동집이라 모든 게 반짝반짝 정갈하다. 이곳은 주문 시스템이 독특하다. 사각쟁반을 밀면서 매장을 한바퀴 돌게 돼 있다. 먼저 출입구 근처 우동물이 팔팔 끓고 있는 조리실에서 메뉴를 정한다.
메뉴에 따라 우동을 대접에 담아주면 쟁반을 밀고 가면서 토핑도 얹고 사이드 메뉴로 튀김같은 걸 골라 담는다. 마지막에 계산을 한 후 자리에 가져가 먹으면 된다. 우동국물은 얼마든지 더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해놨다. 나는 찬물보다 뜨거운 국물을 좋아한다. 튀김 먹을 때는 국물이 국룰 아닌가.
- 후속 기사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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