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을 연습하는 아이들
참나무어린이집
저도 처음에는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더라구요. 공동육아는 두 방향에서 링 위에 올라 대결하는 '스파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부모와 아이, 각각 두 방향에서요. 물론 복싱 장갑을 끼고, 피터지게 싸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파링은 아니죠.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강도높게 스파링합니다. 이 스파링은 엘리트 교육에서 보여지는 학습의 밀도를 연상하게 합니다. 특히 자유놀이를 살펴보면 이런 부분을 두드러지게 관찰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1년에 한 두 번 휴가를 내고 일일교사로 하루 내내 아이들을 관찰해봤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각자의 욕구에 맞추어 역할과 그날그날의 규칙을 구축합니다. 이 자유놀이 시간에 갈등, 협상, 다른 친구의 욕구를 살피는 행위, 내 욕구에 대한 표현은 물론 내 욕구를 억제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행동 그리고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비난, 부정적 정서에 대한 회복, 혼자 자신을 돌보는 시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상호작용이 폭발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속에서 교사들은 긴 호흡을 통해 이런 상황을, 적절히 그러니까 안전하게 조율합니다. 아이들은 이 작은 실패를 중재자인 즉 교사와 함께 안전하게 반복합니다. 이 훈련은 비유로써 뿐만 아니라 실제와도 유사하게 동작합니다. 보통 격투가들은 격투술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통증에 익숙하지 않기에, 그들의 거친 용어로, '쳐 맞아 보지 않았기'에 격투가를 이길 수 없다고들 합니다.
아이들은 종종 작고 조율된 사회적 실패를 겪습니다. 재밌어 보이는 놀이에 용기를 내서 놀자고하는 도전, 같이 놀자고 했을 때 거절, 놀이중 욕구 충돌, 욕구를 표현 못하고 무시당하는 경험 등이죠.
이런 사회적 실패는 사회적 통증, 즉 우리가 종종 상처라고 부른 것을 겪는데, 우리의 뇌는 이 사회적 아픔을 물리적 통증과 같이 처리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실제 고통을 맞이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날씨가 변하듯이, 한편으로 계절이 순환하듯이 자연스럽게 털고 일어나는 나죠. 책을 읽거나 사지선다에서 고르는 학습을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면서 체득하죠.
엘리트 교육의 밀도를 연상한다는 게 좀 전달이 되었을까요? 놀이 중심이라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매우 야심찬 목표입니다. 이런 훈련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본 교사는 "둘이 친하게 지내야지, 친구 손 잡고 사과해"와 같은 하나마나한 개입은 하지 않죠. 교사는 놀이를 풀고 거두어 들이면서 서로의 불편한 점을 자연스럽게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부모도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스파링을 한다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이집의 또다른 한 축은 바로 부모들입니다.
이곳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은 김장, 대청소, 주말청소와 같은 행사, 매달하는 방모임과 같이 가정과 아이들 상태를 공유하는 모임, '아마활동'(일일교사) 등을 포함해 매우 다양한 방향에서 아이 상황을 공유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외칩니다.
"주말 청소에서 너희가 쓰는 장난감, 아빠가 깨끗하게 닦았어. 내일 어린이집 가면 재미있게 가지고 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