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지사, 서울 상동교회 전시실, 김호용 지사
국가보훈부
1948년 9월 29일 김호용(金浩溶) 지사가 세상을 떠났다. 1905년 2월 17일 출생했으니 향년 43세였다. 본적은 경북 영천 신녕면 완전리 89번지로, 1919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신녕보통학교 학생이었다.
14세 김호용은 황정수, 박칠성, 김해오 등 다른 학생들과 함께 4월 6일 신녕면 완전동 노영수의 집에 모여 태극기를 나무에 걸어놓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밤에는 조윤이까지 합세해 매양동에서 가두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일반 주민들도 시위에 동참하였다.
시위 후 끌려간 46세 전도사와 14세 학생
신녕 주재소 경찰들에게 체포된 김호용은 재판에 회부되어 그해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겨우 14세밖에 안 된 김호용이 일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법정까지 끌려가 벌벌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고문 당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는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의 "3월 26일경 교사 박필환이 운동장에서 왕산동에 거주하는 생도를 모아 만세를 부르며 구한국 독립의 시위운동을 하였다는 것을 듣고, 이에 동일하게 만세를 불러 독립을 도모할 것을 (김호용 등이) 계획"하였다는 대목이다. 일제 경찰은 아이들을 구타하면서 '배후'를 추궁하였을 것이고, 결국 박필환 교사가 소환되었을 터이다.
김호용 지사는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묘소 정보'에 "산골: 유골을 화장하여 산이나 강, 바다 등에 흩뿌려 묘소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로 기록되어 있다. 묘소가 없는 독립유공자의 경우 호국원에 가묘를 설치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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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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