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두 아이의 문제집. 가정에서 초등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이준수
우리 가정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엄마 아빠가 초등교사이니 아이들이 얌전히 책만 보고 알아서 숙제를 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집에서 나는 선생님이 아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며, 아이의 가정통신문을 확인하고 서명하는 아빠다. 아빠는 교육자로서 권위가 별로 없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피아노 학원 하나를 다니고, 방과 후로 요리와 컴퓨터 교실을 수강하고 있다. 대신 3학년 2학기 국어 문제집과 수학 연산을 복습 차원에서 공부한다. 작은 아이는 학원 없이 늘봄 교실에 다닌다. 그리고 방문형 학습지로 수학 연산을 익히는 중이다. 그다지 학습량이 많지 않지만 이마저도 매일 작은 소란을 피워야 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6시 30분쯤 저녁 식사를 끝낸다. 그 후에 할 일로 분류되는 것은 양치와 샤워, 문제집이다. 문제집이 다섯 권씩 되면 무리가 가겠지만 우리 집의 학습량은 지나치지 않다. 국어 문제집 두 장, 수학 학습지 3장, 과학 1장 정도다. 어쩌다 집중해서 끝내는 날에는 이십 분도 안 되어 모든 하루치 공부를 끝낸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지식 공부'를 열성적으로 하는 아이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밥 먹고 소파에 엎드려 만화를 읽는 아이를 독려하는 과정부터 저녁 공부는 시작이다. 처음은 부드러운 언어로 살살 달래듯 말을 건넨다. 표정도 온화하다. 그렇지만 나긋나긋한 대화는 아이를 움직이게 만들지 못한다. 계속 만화를 읽는다. 참을 인자를 마음속에 새기며 "기다려주자"를 속으로 되뇐다.
십 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양치와 샤워를 하고 공부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아까보다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다. 집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흐른다. 아이들은 그제야 슬슬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뗀다. 양치하고 샤워하느라 한 세월이 간다. 또 문제집 한 과목하고 다른 과목으로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부모의 심정은 쭉 이어서 한 방에 끝내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위협 아닌 위협을 하며 평화로운 밤을 보낸다. 자기 주도적 학습은 직업 교사를 부모로 둔 가정에서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른이 규정한 '공부'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아이들은 놀랄 만한 주도력을 발휘한다.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큰 아이는 십 분 만에 태블릿 PC로 캐릭터를 쑥쑥 그려낸다. 방과 후 컴퓨터 교실에서 배운 인공지능 작곡 서비스로 음악도 넣는다. 그리고는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더니 시네마틱 동영상을 찍는다. 슬로 모션 편집을 해서 동생이랑 깔깔 거리며 논다. 그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무렵에는 도스에 설치된 타자연습이나 하고 있었는데 격세지감이 들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허용하는 범위가 굉장히 좁다는 사실을. 어른은 대학입시나 노동 시장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에 한해서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허용한다.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서 시골에서 소박하게 농사지으며 살고 싶으니 특별한 업적을 세우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면 몹시 걱정을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건만 학위취득이나 직업 시장에서 소득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보호자가 추구하는 아이의 '자기 주도적 학습'에는 세속적 성공이라는 목표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아이가 반항 없이 잘 따라와 주면 더욱 좋고.
'자기 주도적 학습'의 틀을 벗어나면 보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