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살생각시 도움요청의 장벽’에 대한 통계다. 이는 자살생각이 들고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2022년 한국의 자살률은 25.2명에 이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유대인들의 자살 현상을 조사하던 사회학자들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 건수가 30건에 이르면 전염병이 창궐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살 전염'의 위기 속에 사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 자살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 생각을 해 본 사람'은 14.7%에 달하며,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살 생각이 들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자살 생각 시 도움 요청의 장벽'에 대한 질문에서 57%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 생각했으며, 그 다음으로 '도움받을 방법을 몰라서(40.9%)', '희망이 부족해서(35%)', '주변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28.9%)' 등을 꼽았다. 이 또한 자살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리는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터부화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금기어 수준이다. 서종한 교수의 <심리부검>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물론 생각하기조차 꺼려. 자살에 대한 현실적인 위험성 감지나 예방 조치가 어렵다"고 말한다. '관계 중심' 사회인 한국은, 자살이 일어나면 관계망 안에 있던 가족과 연인 등의 측근을 비난하거나 안 좋게 보기 일쑤다.
실제로 자살 사망자 유가족의 반 이상이 고인의 사인을 알리지 않거나, 다른 사유를 들어 덮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자살에 대한 논의는 더욱 축소됐다.
역사적으로 자살이 금기시된 건 종교서부터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약 400년경에 <신국론>을 쓰며 중세 교회의 도덕적 기초를 다졌다. 그는 십계명 중 "네 이웃을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재해석해 인간을 죽이는 모든 행위를 살인으로 봤다. 그는 자살자를 "악마에 미친 자"라고 비판하며, 모살죄보다도 더 큰 중범죄로 다뤘다.
이후 유럽 법령은 교회법 기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8세기 프랑스는 교회법에 따라 실정법을 도입했고, 독일어권은 자살자를 교회 묘지에 묻을 수 없게 법제화했다. 영국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파멸할 권리가 없음을 법령에 명시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각 문화권에서는 자살자를 경멸하는 '자살의 터부화'가 일어났다. 인류학자 하르트무트 크라프트는 "터부란 금지 규칙을 규제하는 중요 수단이자 사회적인 공동생활의 정체성이며, 위반 시에는 공동체로부터 제명당할 위협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곧, 자살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이처럼 자살에 대한 논의를 막은 건 종교와 관습, 사회와 문화적 요소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문제다. 그러나 자살은 특수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자살 위험을 경험할 수 있고, 또 누구나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살 생각을 터놓는 대화 환경이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 이는 자살을 예방하는 강력한 보호 장치이자 삶의 의지를 새롭게 갖는 계기가 된다.
자살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