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최강 회의 장면교사와 학생들은 매주 강당에 모여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다양한 방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혜학교
한편에서는 지존최강 실험을 하면서 "교사회에 대한 기대치, 학생회에 대한 기대치.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학생이 지존최강의 취지를 충분히 알고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독였다. 여름 방학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혜학교의 총학생회장은 이렇게 떠올렸다.
"지존최강이 시작하고, 내가 배고플 때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눈을 비비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짜릿한 일이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생활할 때도 덜 예민해지고, 머리도 잘 돌아가더군요. 이 점만큼은 지존최강을 하면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저는 지존최강을 진행하는 입장이니만큼 그 의도와 취지를 제대로 실현해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습니다. 학생회장으로서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무엇을 잘못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어느덧 막연히 마무리되기만을 바라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의 관심도 저조와 이런저런 문제들을 맞닥뜨리며 지존최강의 열정이 하향곡선을 띠는 것을 보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2. 교사회의 실험 중단 선언과 그 이후
여름방학에 들어가면서 지존최강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이 사그라 들어버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다. 학생들이 패기 있게 시작한 지존최강의 실험이 실패의 경험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비록 이렇게 중단하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들은 이른바 '출구전략'을 고민했다. 여름방학 중 길고 뜨거운 논의 끝에, 4번 규칙 "교사회의 2/3 이상이 동의하면 즉시 중단할 수 있다"에 따라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지존최강 중단'을 선언했다.
교사들이 지존최강을 중단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움의 공간에서 학생의 건강을 담보로 실험을 지속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둘째, 학생들 제시한 개혁안이 지혜학교 먹거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셋째, 2학기에 지존최강을 지속할 수 있는 집단의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넷째, 학생 자치 활동이 지존최강에 매몰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 지존최강 이후 우리 공동체에 던져진 문제의식과 질문들이 가장 중요한 성과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지존최강의 최종 성패가 판가름 날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질문들이 제출되어 공동체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공론장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학생들은, 앞에서는 학생들의 의사를 전혀 확인하지 않고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뒤에서는 학생들 자신이 지존최강의 취지를 더 이상 살릴 힘이 없다는 점을 떠올리며 좌절했다. 교사들은 이런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며, '이렇게 실험은 중단했지만 이번 실험이 남긴 숙제들을 함께 풀어 나가자'고 손을 잡았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간식, 즉 초가공식품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서는 막고 다른 쪽에서는 요구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초가공식품이 무엇이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다 같이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모여 '식품첨가물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괴로워했다고 한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어. 모르면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아는 채로 괴로워하면서 먹을 수밖에 없잖아!'
이제 학생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것은 없다. 어떤 학생들은 허기와 욕망을 달래기 위해 '쿠킹클래스'(자율부엌)에 있는 식재료를 활용해서 스스로 만들어 먹거나 교사들이 이따금씩 만들어 주는 간식을 쫓아 다니고, 어떤 학생들은 생활관 구석에서 몰래 간식들을 먹고 있다. 그 와중에도 특강 시간에 들었던 아질산칼륨, 식용염화칼슘, 소르빈산칼륨 따위를 떠올리며 흠칫 주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