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가 국회에서 진행한 <아이돌 분야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명 국회 토론회>에서 아이돌(연습생)을 경험한 당사자 분들이 직접 참석하여 현장 발언을 하였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전문성 없이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연습생들을 관리하다 보니까 비전문적인 지식과 비현실적인 다이어트 기준 강요를 하는 등 일관성도 없고 불합리함도 생깁니다. (중략) 인터뷰를 한 연습생 중에서는 중학생인데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 탈모가 온 경우도 있었어요. 기면증이라든가 불면증이나 무월경은 기본이고요. 건강의 많은 문제가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8년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경험한 허유정씨가 지난 9월에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주최 국회 토론회에서 한 이야기이다. 아이돌 연습생이 일상적으로 겪는 학습권과 건강권의 침해에 한국사회는 무뎌져 있다. 이들이 견디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아동·청소년 학대가 아니라, 성공한 이들의 후일담으로만 남겨진다.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발언권을 얻지도 못한다. 관리의 책임을 회피하고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 연습생 간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직업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는 기획사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차별적인 대우에도 직원의 기분을 맞춰주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한다.
데뷔한 아이돌도 수납된 채, 경제생활도 못 하는 전속계약
데뷔한 아이돌의 현실도 녹록치 않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매우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산업이다. 1년에 많게는 70여 팀이 아이돌로 데뷔하고, 그 중에서 살아남는 것은 소수이다. 당장은 살아남더라도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자리 잡는 경우는 0.1%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조건에서 기획사는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위험은 줄이고, 수익을 늘리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핸드폰 사용 금지나 철저히 통제된 숙소 생활 등의 사생활 통제는 기본이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기획사가 관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연애는 금기 중에 금기이다. 사람 자체가 곧 상품이 되는 아이돌 산업에서 상품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기획사가 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이고, 이는 아이돌을 상품으로서만 다뤄지게 한다.
"절대 다수의 아이돌이 처음 계약금 300만 원 정도만 받고서, 데뷔 후 실패하면 버려진 채로 있습니다. 전속계약기간 7년 동안 아무런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회사는 계약을 유지해도 손해가 없고, 어쩌다가 '역주행'이라도 할 수 있으니, 계약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같은 토론회에서 14년 동안 그룹 틴탑의 멤버로 아이돌 생활을 한 방민수씨의 발언이다. 특히 아이돌로서의 이미지 소모를 이유로 일체의 다른 경제활동을 제한받기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기획사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된다는 표준계약서의 조항이 현실에서는 독소조항으로 작동한다. 누구나 알만한 아이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몇 번 활동하고서 잊히는 아이돌들은 마치 예쁜 보석을 서랍에 넣어놓듯이 그들의 청춘과 함께 전속계약에 의해 '수납'된다.
기획사 입장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아이돌 그룹 하나를 성장시키는 데 기본적으로 수억 원이 들고, 그렇게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려면 아이돌에 대해서 철저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외모 관리가 철저해야만, 사생활에 결점이 없어야만 성공하는 것이 현실이고, 당사자도 아이돌로서의 성공을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불공정과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계약이 미성년자일 때 진행되는 점이다. 정말 예외적인 성공을 거둔 경우를 빼고는 기울어진 권력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당장 당사자가 원한다고, 혹은 성공하려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사회가 용인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