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중인 물주머니따뜻해요
정슬기
내가 처음 이 물주머니를 핫팩처럼 사용하게 된 건 병원에서였다. 주로 다인실에 머물렀던 나는 항암치료로 몸이 약해져서였는지 유독 한기를 많이 느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나 같지는 않아서 창문을 열어 놓기 다반사였다. 참다못해 온도를 내려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카디건을 걸치고 이불을 두 겹으로 덮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그때 남편이 물 주머니를 가져다주었다. 고작 한두 컵의 뜨거운 물을 채운 이 물주머니가 얼마나 따뜻할까 싶었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운 물을 받으러 배선실로 향했다. 물주머니 위에 까만 네임펜으로 삐뚤빼뚤 새겨진 내 이름 석자를 마주할 때마다 거기에 이름을 쓰고 병원으로 향했을 남편의 그림자가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당시 병원에서 나는 잠들기 전 뜨거운 물이 담긴 물주머니를 두둑이 준비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몸이 춥기도 했지만 마치 애착인형처럼 내 마음에도 따끈한 위로가 되었다. 매일 물주머니를 안고 자다 보니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서 환자들을 도와주시던 여사님들도 내 물주머니를 챙겨 주셨다. 나는 웬만해서는 뭐든 스스로 하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병원 여사님들은 밤이고 낮이고 할 일이 많아 고단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새벽 즈음엔 새벽 당번 여사님들이 물주머니를 갈아주러 들르시기도 했다. 문득 잠에서 깼는데 물은 식었고 몸은 으슬으슬하고 막상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 고역인 내 모습이 선했다는 듯, 조용히 병실 커튼을 열고 물주머니를 가져가시던 여사님들이 계셨다.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찬 물주머니에 놀랄까 수건에 감싸주고 잘 자라고 속삭여 주던 여사님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순간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큰돈을 쥐어 주어도 어떤 사명감이나 소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병원에서 일하시던 여사님들도 그런 분들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길게 머물며 그분들과 사적인 대화도 많이 나눴는데 가족 중 암이나 큰 질병을 겪는 걸 보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되셨다는 분도 계셨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목숨을 앞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환자들을 겪으며 어느새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몸에 배셨을 수도 있다. 문득 물주머니를 꺼내며 내가 이만큼 나아진 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뜨거운 물주머니의 효능은 더 있다. 항암 치료 중에는 배가 아픈 날도 많았는데 따뜻한 물주머니를 배에 대면 복통도 조금씩 사그라드는 듯했다. "엄마 손은 약손~" 하며 아이의 배를 문지르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목이 칼칼하다 싶은 날엔 목에, 눈이 침침하다 싶은 날엔 눈에 살짝 얹어주면 어느 정도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의보감에 매일 아침 양손을 비벼 열을 낸 후 눈을 감싸주면 눈이 밝아진다는 대목이 있는데 내가 따뜻한 물주머니로 눈이 편안해진 게 그저 느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염증과 눈물을 동반한 안구 숙주가 심했을 당시에도 안과 선생님은 안약 처방과 함께 온찜질을 추천해 주셨다. 그 당시 같은 병실에 입원해 복통을 자주 호소하던 환자들에게도 이 물주머니를 추천해주었다.
내 몸의 온도를 올리려는 노력